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집유석방' 후폭풍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차명재산 문제까지 불거진 삼성이 ‘첩첩산중’에 갇힌 형국이다. 삼성으로선 대법원 판결도 안심할 수 없어 가슴을 조릴 수밖에 없다. 논란을 의식한 이재용 부회장은 두문불출한 채 동계올림픽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이 부회장이 풀려난 지 나흘째인 8일 판결문을 뜯어본 각계각층의 비판이 이어지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13개 시민단체는 이날 오후 서울 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상 최악의 면죄부 판결”이라며 “사회정의에 역행하는 사법부는 존재 의미가 없다”고 질타했다. 삼권분립을 존중해온 정치권에서도 이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전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범계 의원 등이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판결, 판경유착”, “널뛰기 판결, 취향판결”이라고 판결을 부정한데 이어 이날 박영선 의원도 “짜맞추기 판결”이라며 공세를 계속했다. 지난 6일 현직 부장판사가 실명으로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혀 사법부내에서도 논쟁이 불붙었다.
과거 재벌총수 재판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뒤집힌 결과는 드물었지만 삼성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형국이다. 삼성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대규모 반도체 투자나 사회공헌, 지배구조 개선 카드를 고심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갈 것 같은데 진보성향 대법관으로 속속 교체되는 상황”이라며 “삼성으로선 파기환송되는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사회적 분위기 전환을 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차명계좌 이슈까지 불거져 분위기 반전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삼성 총수일가 자택공사 관련 횡령 혐의 수사 과정에서 2008년 삼성특검 당시 확인되지 않았던 4000억원대 규모 차명계좌가 추가로 확인됐다는 것인데, 계속되는 비리 의혹이 삼성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키우고 있다.
여론 반감은 실제 만만찮은 규모를 형성했다. 이날 이 부회장 집행유예 판결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과반수를 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2심 재판부의 정형식 판사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사흘만에 추천수가 20만건을 넘겼다. 청와대가 공식답변해주기로 정한 기준이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청와대의 직접적 답변이 부적절하다면, 국민감정을 감안해 우회적 답이라도 내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남근 민변 부회장은 “국민 분노를 이해할 수 있지만 판사의 파면문제에 청와대가 대응하는 것은 솔직하게 어렵다고 답하는 게 적절하다”며 “마찬가지로 삼성도 사회공헌 할 것이 있으면 해야지, 물론 사법부가 고려 안할 수 없겠지만 그것으로 영향을 주려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사법부 판단에 청와대의 직접적 언급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다만, “정부가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거는 와중에 이런 판결이 나오는 것은 앞으로도 정경유착, 법경유착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키우는 만큼 정부가 재벌개혁에 매진하겠다는 뜻으로 청원에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삼성에 대해선 “구태를 끊겠다면 먼저 해야 할 것은 금산분리”라며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전환 문제도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나오기 전에 증여에 해당하는 벌금을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혀야 한다”고 했다.
동계올림픽 참석 여부를 고심했던 이 부회장은 결국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개막식엔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만 참석한다. 판결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보인다. 삼성 내부적으로도 여론을 자극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는 분위기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향후 이 부회장의 행보에 대해 “정상적인 전망을 해보면 당분간은 조용히 있으면서 경영구상을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