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는 누구의 것일까. 숱한 루머와 함께 세간의 설왕설래가 이어졌던 ‘다스 진실의 장막’이 걷히기 시작했다. 시중의 루머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임이 거의 확실시 되는 중이다. 이쯤 되면 이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거짓말을 부지기수로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의 거짓말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프랑스 정치학자 토마 게놀레(Thomas Guenole)는 정치인들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팔고자 하는 광고업자나 상거래업자보다 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대부분의 정치적 거짓말은 조작된 스팟광고와 어느 일요일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친절한 허풍쟁이의 중간 정도”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프랑스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요즘 한국 정치판을 보면 게놀레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을 국내 정치공작에 이용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끝없는 거짓말이 이를 보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야당 대표는 여전히 거침없는 거짓 프로파간다로 민주주의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들의 거짓말 솜씨를 어찌 스팟광고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허풍쟁이의 중간 정도로 볼 수 있겠는가.
세계 대부분의 정치가 부패했다지만, 대한민국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정치 신뢰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고 전직 대통령들은 거의 대부분 검찰 수사를 받거나 감옥에 수감됐다. 언론은 이렇듯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십으로 희화화 할 뿐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 촛불혁명은 위대했다는 말을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인의 거짓·위선이 수위를 넘을 때 즉시 진실 규명을 하는 기제들을 동원했다면 혁명에 준하는 시민운동이 과연 필요했을까. 우리는 항상 타이밍을 놓친 채 민주주의의 파괴를 뒷짐 지고 바라보다 뒤늦게 저항하는 비극을 되풀이 했다. 이러한 악순환을 근절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게놀레는 프랑스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단속하는 의미로 지난 2015년 <정치인 거짓말상>을 제정했다. 올해 네 돌을 맞는 이 상은 지난 2월2일 ‘2017년의 거짓말상’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에게 최고 대상인 그랑프리(Grand prix)를 수여했다. 그 주인공은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프랑수와 피옹이었다. 지난해 프랑스는 피옹을 둘러싼 ‘페넬로프 게이트’로 시끌시끌했다. ‘미스터 정직성’을 닉네임으로 달고 있던 피옹을 두고 한 언론은 ‘부인과 아이들을 보좌관으로 거짓 채용해 급료를 받아 챙겼다’고 보도했다. 피옹은 언론의 폭로를 부정하고, 만약 자신이 검찰의 조사를 받는다면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 약속을 저버렸다.
심사위원 특별상(Prix special du jury)은 크리스토프 카스타네(Christophe Castaner)에게 돌아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정부 대변인을 맡은 카스타네는 대통령의 여러 말실수를 옹호하기 위해 자주 일그러진 행위를 한 것이 수상 이유로 꼽혔다.
주목할만한 시선상(Prix de certain regard)에는 브뤼노 레타이오(Beruno Retailleau)가 선정됐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장인 레타이오는 2017년 3월5일 트로카데로의 대선 캠페인 때 “여러분은 20만 이상이다”고 외쳤지만, 사실 그곳에 모인 사람은 6만 명에 불과했다.
네버 엔딩 스토리(L‘Histoire sans fin)상은 프랑스 엥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 뤽 멜랑숑 대표가 받았다. 멜랑숑은 베네수엘라 데모 때 죽은 반체제 인사들의 숫자를 과소평가한 것이 수상 이유였다.
게놀레가 <정치인 거짓말상>을 유머러스하게 제정했지만 목적은 의미심장하다. 먼저 정치인들에게 거짓말을 적게 하도록 하고, 정치기사 작성자들에게 사실 확인(Fact–checking)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중들에게는 정치인들의 발언과 약속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것이다.
심사위원단도 탄탄하다. 정치부 기자와 펙트체킹을 전문으로 하는 기자들,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된다. 이번 심사위원은 르 프앵의 정치부 기자 위고 도메넥(Hugo Domenach), <모 클레>의 창시자이고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박사인 라파엘 아다(Raphael Haddad), 마리안의 편집국장 델핀 르구테(Delphine Legoute), 리베라시옹의 가짜뉴스 담당 폴린 물로(Pauline Moullot), 프랑스 국립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클레르 세카이(Claire Secail), CNEWS의 시평담장자이자 시앙스포 정치학 교수인 클레르망 빅토로비치(Clement Victorovitch)이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이 오십보백보라지만, 2018년 프랑스 <정치인 거짓말상>의 주인공들을 보면 우리 정치인들의 거짓말과는 감히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어버리는 우리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한국 정치는 언제까지나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할 것이다. 시민사회가 나서서 프랑스처럼 <정치인 거짓말상>이라도 제정하고, 거짓말의 고수들에게 불명예 트로피를 안겨준다면 정치가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정치의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거짓 정치인들에게 불명예의 월계관을 씌우고 창피라도 주면서 정치문화를 바꾸자.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