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비판 없이 발전 없다

입력 : 2018-02-27 오전 6:00:00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의 능력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는 아마도 여론조사 지지율일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19~21일 전국 성인남녀 15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후 22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 하고 있다는 의견은 66.2%, 그렇지 못하다는 의견은 28.9%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가상화폐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등의 문제로 지지율이 한동안 하강곡선을 그렸지만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계 어느 지도자보다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으니 갈채를 보낼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이 지지율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것인가.
 
문재인정부가 탄생한지 어언 10개월. 이제 정부는 결과물을 하나씩 내놓고 평가를 받아야 할 차례다. 그동안은 주로 문 대통령의 이미지와 커뮤니케이션 기술, 소탈한 캐릭터 등에 기반 해 국민의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는 정치 전문가들과 언론이 나서 문 대통령의 지난 10개월 간의 업적을 이야기하고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공공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집안싸움으로 정쟁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공약 이행이 얼마나 되어가고 있는지 분석하고, 그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향후 국정운영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촉구해야 한다.
 
문 대통령보다 조금 늦게 대통령에 오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취임 후 70%에 육박하던 지지율이 최근 35%로 떨어졌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했을 때 최하위 수준이다. 취임 후 같은 시기의 니콜라 사르코지·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지지율보다 낮은 것이다. 한 언론은 “프랑스인들이 마크롱에게 뾰로통해지고 있다. 올 1월부터 마크롱의 지지율과 국민적 신뢰는 하강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기사화했다. 이러한 평가가 나오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먼저,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적 지지기반이 부족하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우파 유권자들의 충직함에 의존할 수 있었고, 올랑드 대통령은 사회당 유권자들의 마음에 의지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해줄 기반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야당이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혹독한 분석을 쏟아내고 있는 이유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새 대통령이 등장하면 10개월에서 1년 정도는 ‘죄가 없는 시간(Etat de grace)’으로 보고 비판을 삼간다. 그러나 이 기간이 끝나면 새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결과를 내 놓으라고 촉구하며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센 에 마른(Seine et Marne) 지역 하원의원이자 공화당 의장인 크리스티앙 자코브(Christian Jacob)는 지난 15일 <르 피가로 토크>에 출연해 마크롱 대통령이 발표한 국정 계획을 “연막(ecrans de fumee)”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국가수반의 <기능(fonctionnement)>에 대해 “4일 만에 대형병원, 바깔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 프랑스 이슬람 조직 등 국가 서비스 기능을 대개혁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고작 그 것 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코브는 이러한 발표는 다른 국정과제를 희석시키는 ‘수세장치’라며 연막을 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근거를 대며 조목조목 따졌다.
 
같은 당 로랑 보키에 대표는 “부자들의 대통령”이라고 마크롱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는 마크롱 대통령이 관리직들의 지지를 크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키에 대표는 마크롱 대통령을 견제하는 진지한 야당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보키에 대표가 공화당의 새 리더로 발판을 다지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적수로 자리 잡은 이유도 빼 놓을 수 없다. 3월에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는 사회당 간부들은 주로 저소득층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고 퇴직자들은 CSG(일반 사회보장부담금)의 인상을 못 마땅해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입소스의 장 프랑수아 도리도(Jean-Francois Doridot) 여론조사 전문가는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성장의 회복세로 프랑스를 매혹하는 감정과 구매력을 올리지 못하는 것 사이의 괴리”로 분석했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새 대통령이 국가의 수장이 되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결과물을 촉구하며 그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서슴지 않기 때문에 지지율은 하강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대통령이 좋은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치열하게 전략을 짜고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경제원칙에 따라 결과를 도출해내지 않으면 국민은 싸늘하게 외면해 버린다.
 
한국도 이제부터 새로운 시각으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평가하고 비판해 효율성 있는 민주주의로 발전시켜갈 수 있어야 한다. 매주 쏟아지는 여론조사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공개되지만 정작 평가 내용은 무엇인지 우리가 알 길이 없다. 또한 새 정부가 들어선지 10개월이 되는데도 문 대통령의 수행 능력이 어느 면에서 뛰어나고, 어느 면에서 부족한지 뚜렷한 분석조차 없다. 이는 문 대통령과 정부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서도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건전한 비판의식으로 문 대통령과 새 정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결코 독이 아니라 자양분임을 알아야 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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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