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일촉즉발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 속에 남북·북미 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지면서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려다 밀려난 중국과 일본 내에선 ‘패싱’ 위기감마저 포착된다.
외교부는 12일 “강경화 장관이 오는 15~17일 미국을 방문해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는다”고 밝혔다. 지난 8~11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방미에 이어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연이은 미국행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회담에서는 최근 급진전된 한반도 상황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향후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남북·북미대화 관련 양국 간 긴밀한 공조 방안에 대해 협의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회담 사전조율과 실무협의를 위해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4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필요한 특사단·실무단 상호방문이 언제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상황에 대해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현재 남북 간에 일정 등 실무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논의가 없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인선을 주초에 마무리한 후 주말쯤 첫 회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북미 정상회담 관련해서도 백 대변인은 “북한 당국의 공식 반응이 아직 없다”며 “북한 나름대로 입장정리에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반 호의적인 분위기와 달리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이르기까지 북측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북한당국이 관리하는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일정에 오른 조미(북미) 수뇌회담, 전쟁소동의 종식과 평화 담판의 시작’이라는 미국과의 정상회담 기사를 올렸다가 삭제한 것도 북측의 신중한 접근을 보여주는 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 내 강경파 인사들이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는 가운데 사태를 관망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현재 관영매체를 통해서는 남북·북미 정상회담 관련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미국 측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상회담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화된 일정협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와 별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미 양측이 파견할 특사단 면면이 거론되는 중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 협의를 위해 북한에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외교 담당 부위원장 또는 리용호 외무상을 단장으로 하고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특사로 참가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미국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부부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북측 대표단으로도 참석한 바 있다. 남북관계 만큼이나 중요한 북미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북측의 의중을 전달하기에 김 부부장 파견은 제일 효과적인 카드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대북 대화파로 꼽히는 틸러슨 국무장관의 북한행이 점쳐진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후보 중 하나다.
이같은 남·북·미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중국·일본의 심경은 복잡하다. 북미 정상회담 발표 당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내달 초 미국 방문 의사를 밝혔다. 일본 내에서 이른바 ‘재팬 패싱’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이를 수습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일본이 향후 어떤 대외기조를 펼치도 관심사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올해 들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화노선을 들고 나오자 “대북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미소외교에 나서고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뤄왔다.
중국도 공식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정착 분위기를 환영하고 있으나, 북미 정상회담이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억제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양회 등 바쁜 일정 속에서 중국을 찾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12일 오후 직접 면담한 것도 중국이 남북미 대화에 각별히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