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한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성사되면서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최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북한이 그 어느 때보다 비핵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면서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의 멍에를 벗는 데 한 발짝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 수용을 놓고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이고 끈질긴 대북·대미 설득과 미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관여 정책으로 인한 북한의 국제적 고립 심화, 중국의 적극적 대북제재 협조, 국제사회의 초고강도 제재로 인한 경제파탄을 피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결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올해 초만 해도 북한은 북미대화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하며 남북대화에 관심을 보였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핵 단추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며 강경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던 북한이 북미대화를 수용한 것은 우리 정부의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개최를 이용한 평화분위기 조성과 끊임없는 ‘중재 외교’가 빛을 발한 결과로 보인다. 19대 대선 기간부터 북핵문제 해결 의지를 피력해온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끊임없이 북미대화 의사를 타진하며 양측의 거리를 좁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는 취임 다음 달인 지난해 6월을 시작으로 3차례의 정상회담을 진행하며 신뢰를 다졌다. 6월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한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문제들에 대한 남북 간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열망을 지지했다’는 문구도 포함시켰다.
북한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지속적인 대화 의사를 밝혀왔다. 지난해 7월 독일 쾨르버재단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 긴장과 대치 국면을 전환할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결국 올림픽에 선수단은 물론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 대표단의 개막식 참석이 결정되면서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경우 구성 초반 ‘한국 선수들 기획 박탈’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평창 평화올림픽’의 상징이 됐다. 여기에 북한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이 정상회담 성사라는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다.
국제사회 차원의 대북 제재·압박 역시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끔 한 요인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올해 중심과업은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을 개선·향상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 성공을 바탕으로 ‘핵무력 완성’ 주장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필수가 됐다.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의 자체적인 대북제재·압박이 지속되어온 가운데 결국 남북·북미관계 개선으로 답을 찾은 것이란 해석이 많다.
그러나 실제 정상회담이 열릴 때까지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직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관계 개선의사를 전달하고 북미회담을 주선한 바 있다. 당시 북의 2인자였던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 방미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부 장관 방북이 이어졌으나, 그해 미 대선에서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북미대화는 불발됐다. 김대중정부에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은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 중동문제 해결에 매달리며 평양을 방문하지 못했다”며 “퇴임 후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실수를 한탄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도 회담이 이뤄지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어디일지 시간은 어떻게 될지 등 남은 과제가 많다”며 “이제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조만간 북미 사이에 특사교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