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스튜어드십코드)연금 빠진 '코드', 아직은 '찻잔속 태풍'

'전관' 등 이사회 적폐 여전하지만…기관들 재벌 눈치보기 급급

입력 : 2018-03-14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기관이 늘었지만 자본시장엔 ‘미풍’도 없다. 머릿수를 늘린 제도가 본격적인 주총시즌을 맞았지만, 재벌 이사회의 전관예우 등 적폐가 계속되는 속에도 반대 의결권 행사에 팔 걷은 기관은 없다. 전문가들은 결국 규모가 작은 기관들이 재벌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며 국민연금이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달 주총시즌은 스튜어드십코드의 실효성을 가늠할 첫 시험대다. 기업들이 주총 상정 안건을 예고한 가운데 시즌 초입을 지난 현 시점에 기관의 특별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이슈가 있는 곳은 KT&G 사장 연임에 반대하는 IBK기업은행 정도다. 정작 이곳은 스튜어드십코드에 가입하지 않았다. 가입 시엔 주주관여 정책을 공개해야 한다. 이런 기준 없이 임의적으로 ‘주인 없는’ 기업 인사에 개입하며 관치 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대기업집단에선 그나마도 없이 잠잠하다. 의결권 자문기관들은 전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 이후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 이사회의 책임문제나 ‘로비용 사외이사’ 영입 등을 문제 삼았으나 기관에서 문제제기는 없었다. 이번 주총에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후보를 올린 사례는 10대 그룹에서 30% 이상의 분포를 보인다. 정경유착이나 거수기 이사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9일 주총을 치른 포스코의 경우 전직 장관 출신과 현직 언론사 대표이사를 사외이사에 앉혔다. 포스코 일감을 맡아온 증권사 사외이사 겸직 문제나 언론사 광고 수입원과 연결되는 이해상충 문제가 걸렸지만 주총 통과는 무난했다.
 
 
앞서 대신경제연구소가 지난해(사업보고서) 30대 그룹 사외이사의 경력을 조사한 결과, 감독·사법기관 등 권력기관 출신은 40%에 육박했다. CJ(65.5%), 두산(58.3%), 롯데(57.1%), 신세계(56.5%), GS(55.6%), 현대차(52.3%)는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현대백화점(47.4%), 한화(35.7%), 삼성(32.2%), SK(30.4%)도 30%를 넘었다. 전문성보다 대관업무 성격이 짙은 경력의 사외이사 선임이 집중되면서 지배구조 측면에 부정적이란 지적이다.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은 이러한 대기업집단의 의사결정구조, 즉 이사회 투명성 확보를 목표로 한다. 상법 개정과 스튜어드십코드가 그 일환이다. 상법은 그러나 여야 이견이 커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대신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해 기관들이 상법에 명시된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 등을 주주제안할 수도 있다. 상법 개정 입법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관의 주주활동이 재벌개혁에도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러자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은행, 보험사 등 규모가 큰 기관들의 도입 유무가 관건이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나 아직 관할 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참여 예정 기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다. 도입 시점은 빨라야 올 하반기로 예측되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영진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인게이지먼트(주주관여, engagement)가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연금 같은 큰 기관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영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이전까지 의결권 행사에 소극적였던 기관들의 경영감시 역할에 대한 반성에서 제도가 시작됐다”며 “국내 기관들도 재벌과의 거래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지만 연금이 모범적인 주주활동을 하면 다른 기관들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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