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봄비 오던 밤, 존 레전드식 ‘인류애’에 젖다

정규 5집 '다크니스 앤 라이트' 발매 기념 월드투어

입력 : 2018-03-16 오후 5:02:2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사랑에 관한 철학을 점층법 식으로 전개하는 거대한 서사였다. 연인과 가족을 향하던 연가는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이야기로 이어졌고, 보편적인 ‘인류애’에까지 도달했다. 봄비가 살며시 내리던 15일 밤,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존 레전드의 낭만과 사랑은 그렇게 관객들을 촉촉히 적셨다.
 
존 레전드는 그래미 어워드 10관왕에 빛나는 미국 출신의 알앤비(R&B), 소울(Soul) 가수다. 2004년 정규 1집 ‘겟 리프티드(Get Lifted)’로 데뷔하자마자 그래미 3관왕을 거머쥐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2016년까지 알앤비와 소울, 네오소울, 팝 등 장르를 넘나드는 앨범들로 세계적인 뮤지션이 됐다. 특히 국내 팬들에게는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 주연의 영화 ‘라라랜드’에 삽입된 곡 ‘스타트 어 파이어(Start A Fire)’가 친숙하다. 이번 공연은 2016년 낸 정규 5집 '다크니스 앤 라이트(Darkness & Light)'를 기념한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성사됐다.
  
피아노 앞에서 노래하는 존 레전드. 사진제공=에이아이엠
 
이날 공연 장소였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은 시작 1시간 전부터 가득찬 4000여명의 관객들로 붐볐다. 10대 학생부터 20~30대 청년, 아이와 손을 잡고 온 가족, 중년 부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 입장한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 흘러나오는 미국식 소울과 펑크(Funk) 음악에 흥겨워하며 무대 세팅을 차분히 기다렸다.
 
예정대로 저녁 8시가 되자 무대가 잠시 암전되더니 푸른색 조명이 켜졌다. 드럼과 기타, 키보드, 베이스 연주자, 브라스 연주단과 합창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곧이어 검정 수트 차림으로 등장한 레전드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첫 곡 ‘아이 노우 배러(I Know Better)’를 열창했다. “레전드(전설)는 그저 이름 뿐이야/ 난 (스스로) 자랑스러워지는 것보다 더 나은 게 뭔지 알아/ 명성에 취하지 않을 거야”
 
존 레전드. 사진제공=에이아이엠
 
그의 진심으로 지어진 가사가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리자 시작부터 공연장 전체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첫 곡을 마친 그는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더니 ‘펜트하우스 플로우(penthouse floor)’와 ‘투나잇(tonight)’으로 분위기를 바꿔 노래하기 시작했다. 관능적인 춤을 추며 관객들을 바라보는가 하면, “아유 레디 서울”이라는 추임새도 넣으며 호응을 유도했다.
 
무대 위의 주연은 레전드였지만 그 뒤를 받쳐주는 조연들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트럼펫과 트럼본, 색소폰 연주자들은 레전드의 소리를 받쳐 주며 흥겨움을 더했고, 합창단은 코러스를 넣거나 음악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손짓으로 관객들을 미소 짓게 했다.
 
트럼펫과 트럼본, 색소폰 연주자. 사진/에이아이엠
 
사랑에 관한 전반부의 곡들은 대체로 연인과 가족을 향하고 있었다. '메이드 투 러브(Made to Love)', ‘Start A Fire’, ‘러브 미 나우(Love Me Now)’, ‘유즈드 투 러브 유(Used to Love U)’, '수퍼플라이(Superfly)’ 등 연인과 가족에 관한 사랑 노래 14곡을 1부 동안 차례로 선보였다.
 
멘트를 할 땐 감미로운 간주와 함께 하곤 했다. 그의 말은 가사, 멜로디 만큼이나 달콤함이 깊었다. “우리는 가끔 사랑을 너무 당연시 여깁니다. 하지만 내일은 오지 않을 수도 있죠.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오늘밤! 바로 지금!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저를 사랑한다면 지금 외쳐주세요. 사랑한다구요. (관객들이 ‘I love You’라고 외치자 바로 응답한다.) I Love you too, you all!”
 
‘슬로우 댄스(Slow dance)’ 곡을 시작하기 전에는 “누구 저와 함께 데이트하실 분? 저와 함께 오늘밤 춤 추실 분?”이라는 멘트로 공연장을 술렁이게도 했다. “부끄러워 하지 말고 손을 들어 달라”는 그를 향해 한 여성이 용기를 내 무대로 올라갔고, 레전드는 재킷을 벗어 던지고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로 큰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 냈다.
 
존 레전드 공연장 무대 모습. 사진/에이아이엠
 
레전드가 하얀 수트를 갈아 입고 등장한 2부에서는 사랑의 의미가 점차 증폭되기 시작했다. 평소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관련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온 그의 행보답게 관련된 영상들이 음악에 맞춰 상영됐다. ‘백인을 위한 룸(White For Room)’. ‘흑인의 목숨 또한 중요하다(Black Live Matter)’ 등 인종차별을 환기시키는 단어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고, 모두의 평등이 노래됐다. ‘인류애’로 번진 사랑의 노래들은 앵콜 마지막 곡 ‘글로리’에서 결국 비등점을 찍었다. 레전드와 합창단, 합주단이 주먹 쥔 오른 손을 앞뒤로 흔들었고, 관객들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이 곡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정의와 평등을 위해 행진한 모든 이를 위한 곡입니다. 언젠가 영광의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영광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을 증폭시킨 거대한 서사가 채운 2시간이었다. 총 26곡을 부른 레전드와 합주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관객들은 열렬한 갈채를 보냈다. ‘인류애’로 화합하고 공연장을 나서는 모두를 살랑이는 봄비가 적셨다.
 
열창하는 존 레전드. 사진/에이아이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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