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 기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혁신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3선에 도전한다. 불퇴전의 각오다. 일부에서는 “3선의 피로감이 든다”는 소리도 나온다. 일견 맞는 말이다. 2011년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 시장은 2014년 서울시장 연임에도 성공하며 최장수 서울시장인 고건 전 서울시장의 재임기록(2213일)을 넘어섰다. 하지만 부족하다고 했다. 서울시 행정을 7년이나 도맡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다. 또 한편으론 ‘이제 시작’이라는 박 시장이다. 1000만 시민들과 함께 빚은 250여개 마스터플랜이 빛을 발하려면 연속과 확장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재선시장 박원순’과 다른 ‘3선시장 박원순’이 궁금해진다. <뉴스토마토>는 22일 ‘서울시장 예비후보 릴레이 인터뷰’ 네 번째 주자로 박 시장을 만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2일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청
“방북 제안 받으셨습니다. 평양 가시는 겁니까?”
“감지되시나요? 이미 초청됐다고 하던데요.”
“‘경평 축구’ 가능하겠죠?”
“선견지명이었을까요. 하하.”
서울시청 6층 시장실에서 진행된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대화 내용이다. 선거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이런 대화가 오갔다. 세간의 뜨거운 이슈인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박 시장 방북 초청 언급’ 사실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지난 달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방남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박 시장의 방북 초청을 제안한 사실이 이날 확인되면서다. 한 번도 아니고 수 차례, 특히 그 자리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동석하면서 박 시장의 방북 가능성은 커졌다. 그가 구상해 온 평양과의 도시 간 교류도 재개될 움직임이 보인다.
“남북관계 진전과 남북교역 강화는 대한민국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할 키를 쥐고 있습니다. 성장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혁신성장을 위해 노력을 다하지만 만만치 않죠. 성장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해법은 북한과의 경제교역 관계입니다.”
박 시장은 북한의 노동력과 한국의 기술·자본이 결합해 시너지를 내기 시작하면 급부상한 중국 경제를 추격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약 3200조원에 달하는 북한 지하자원 개발과 개성공단 프로젝트 10개만 만들어져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민족문제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분수령이 될 거라는 평가다. 안보·경제적 부담에서 해방되는,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그는 말한다. 서울의 도시경쟁력 활성화로 이어지는 건 덤이다.
“월드이코노미포럼에서 서울이 도시경영부문 7위에 랭크됐는데 리스크 요인은 딱 하나, ‘남북관계 디스카운트’라더군요. 서울의 관광, 문화, 외국자본 투자 등 모든 부문에서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그겁니다.”
특히 남북관계 진전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민간, 지방정부가 맞물려 가야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끼리는 틀어질 수 있다. 하지만 비정치적이고, 비군사적인 민간과 지방정부는 한 번 두터워지면 불가역적인 관계가 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성사시키며 평화의 큰 길을 열었다면 서울시는 평양시와의 도시교류로 평화의 골목길을 늘려나갈 겁니다. 문재인정부가 남북관계의 ‘앞문’을 열면, 서울은 도시교류로 ‘옆문’을 여는 거죠.”
사실 이런 구상은 박 시장이 3선 도전 명분으로 내세운 ‘10년 혁명’에 담긴 내용이다. 그는 ‘시민 삶을 바꾸는 10년 혁명’으로 명명한 신년사를 통해 사랑·미래·평화에 투자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견지명이었을까요”라고 말하고 농담이라며 웃던 그가 이내 진지하게 표정을 바꾼다.
“도시가 변화를 할 땐 지속가능성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지금 서울은 단절이 아닌 연속과 확장적 진화가 필요한 시기죠.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 뉴욕과 런던, 파리 같은 도시도 사실은 큰 변화를 이루기까지 시장이 10년 이상 재임하며 만들어낸 성취에서 비롯됐습니다. 뉴욕 블룸버그 시장의 12년과 파리 들라노에 시장의 14년이 있었던 거죠.”
3선 시장 박원순의 당위성이라고 했다. 두 정권 아래 탄압을 받았던 서울시의 6년을 뒤로 하고 ‘환상의 커플’ 문 대통령과 함께 도시를 바꾸는 첫발은 이에 막 뗐을 뿐이라고 힘줘 말한다.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이 많이 닮았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시정과 국정의 싱크로율(일치 정도)이 59%에 달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닮은 셈이죠. 문재인정부의 실용적 국정철학에 기초한다고 봅니다. 과거 민주정부 10년 후로 단절이 있었지만, 서울시는 김대중·노무현정부 철학과 비전을 이어받아 현장 실험을 통해 좋은 정책으로 혁신을 거듭했어요. 정부도 그걸 알기에 서울시 정책을 국정에 활용한 겁니다. 서울시는 지금도, 오늘도 계속해서 혁신하고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대책으로 내놨던 ‘하루 대중교통 무료’ 정책이 선거 경쟁주자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았단 게 서운하지는 않았는지를 물었는데 박 시장은 “약이 됐다”고 답했다. 앞으로 도입할 ‘강제 차량2부제’와 ‘친환경 차량 등급제’ 마중물로 시작한 대중교통 무료 시행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경각심이 높아졌고 2부제로 가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어서라고 했다.
“‘오버다, 헛발질이다’ 했습니다. 하지만 오버할 문제입니다. 미세먼지는 침묵의 살인자입니다.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도 부족하죠. 대중교통 무료 정책은 극악한 비상저감조치로 1년 7차례 시행에 한할 것으로 예측해둔 상태였습니다. 비상시기 저감조치 10가지 중 하나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됐고, 시민들이 결정해준 정책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약 1만7000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미세먼지로 조기 사망했다. 서울시가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한 배경이다. 독일에 이어 파리가 대기오염 감소를 위해 대중교통 이용요금을 전면 무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전날 들려온 소식에 박 시장은 쌓아둔 말을 내뱉었다. “무엇이 오버입니까. 파리 시장은 서울 오면 욕먹을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겁니다.”
최근 4년간 55만명이 서울을 떠났다. 탈서울이 급증하는 것이 우려되지는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박 시장이 되레 묻는다. 서울을 무대로 하는 실제 ‘생활인구’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그리고는 “1250만이 살고 있다”고 자답했다. 서울시가 보유한 교통 데이터와 KT 통화량 통계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서울은 하루 150만~250만명이 서울을 무대로 거의 매일 출퇴근한다는 설명이다.
“주택난과 정부 기관 이전으로 굉장히 많은 인구가 빠져나갔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틀림없는 위기지만, 반드시 서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문제는 아닙니다. 뉴욕과 파리는 인구 800만, 280만이지만 세계적인 도시입니다. 인구 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도시 활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동시에 지방 인구 이전은 장기적으로는 지방 균형발전을 부를 겁니다. 지방 소멸위기 속 체계적으로 지방 이전을 돕기 위해 귀농귀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감한 질문을 던져봤다. 미투(Me too) 바람에 출렁이는 서울시장 경선과 관련해서다. 미투 열풍과 맞물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파문에 서울시장 선거는 직격탄을 맞았다.
“우리 사회가 무지했던 ‘젠더 감수성’이 성숙해지는 과정입니다. 과거에 당연하게 여기던 말과 행동이 이젠 모두 용서받기 힘든 것이 됐어요. 제도와 문화에 큰 전환이 올 겁니다. 촉발이 된 건 촛불혁명이죠. 제일 먼저 이끈 건 권력교체지만, 민주주의와 삶의 전환까지 불러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가부장적 적폐청산과 성 평등, 직장 내 사회적 평등으로 이어질 문화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박 시장도 2014년 캠프에서 발생했던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자 박 시장은 침묵이나 부인 대신 온라인으로 한 번, 피해자를 찾아가 또 한 번 사과하며 진심어린 대처를 보여줬다.
“어느 때나 피해자적 관점이 제일 중요합니다. 알든 모르든, 직접 당시 관계했던 일도 아니지만 서울시장 후보 나가있을때 캠프서 벌어진 일인 만큼 책임지고 사과하는게 당연합니다.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모든 조치를 취했고 진행중이며, 이에 대해 피해자도 만족하고 오히려 나를 돕겠다고 SNS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일찌감치 시동을 걸었지만 박 시장에게 지방선거 지형이 녹록지만은 않다. 당 내 경선부터 쉽지 않다. 3파전으로 재편된 경선에서 박영선·우상호 두 의원의 박 시장 독주를 막기 위한 집중 견제가 예상되는 만큼 진통도 있을 전망이다. 본선도 험로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의 출마 여부가 변수가 될 수 있어서다. 박 시장은 호적수 간 경쟁이라 봐 달라고 했다.
“박영선, 우상호 두 의원은 각각 4선, 3선의 역량 있는 국회의원입니다. 그동안의 국정을 다룬 분들이시죠. 경선이 끝나도 계속 함께 할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좋은 서울을 발전시킬 좋은 정책으로 경쟁하는 좋은 과정이 될 겁니다. 과거 훌륭했던 안철수 대표도 마찬가집니다. 이명박정부의 독선을 대응하는 민주개혁 진영의 아름다운 동지였죠. 물론 정치비전과 당이 달라진 탓에 이제 당 후보로서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요.”
곱지만은 않은 서울시민들의 3선 피로감엔 어떤 처방을 내릴지 궁금했다. “영국 가디언지가 뽑은 세계 5대 혁신 시장 중에 현직은 저 뿐입니다. ‘내 삶을 바꾸는 문제’에 집중하면 혁신은 끊임없죠. 새 정부와 함께 만들 결실에 주목해주세요.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불협화음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제가 왜 3선 시장이 돼야 하는지. 지난 시간은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대담=권순철 경제부장
정리=차현정·박용준 기자 ck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