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늦은 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됐다. 그 즈음 프랑스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두 전직 대통령은 재임 시기가 비슷해 자주 비교되곤 했다. 이들은 신기하게도 닮은 점이 많았다. 먼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했다. 그리고 방송 장악을 위해 방송법 개정을 논의했으며 부르주아를 우대했다. 결코 좋은 대통령이 아니었던 두 사람은 불법자금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결국 인생의 파국에 직면해 있다. 한쪽은 이미 영어의 몸이 되었고, 다른 한쪽은 최종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반면 두 사람에 대한 상이한 면도 많다. 먼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한국 사회는 청계천 복원·버스노선 개편으로 서울시장으로서의 치적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권좌에 오른 ‘이명박 신화’를 전면 부인하고 그를 오욕의 대통령으로 낙인찍고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왜 우리는 비참한 역사가 현대정치사에서 점철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이 전 대통령의 비극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물론 본인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우리 국민의 책임은 없는가. 이 전 대통령이 가난한 집 출신으로 자수성가해 현대건설 사장까지 오르자 언론과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 신화에 힘입어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고 재직 중 청계천 복원사업을 성공시켜 또 다른 신화를 썼다. 이런 신화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수감되자 우리 사회는 이명박 신화를 전면 부정하는 한편 ‘공적은 없고 부패만 일삼은 천하의 못된 자’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수인번호 716번을 부여받은 이 전 대통령을 옹호할 맘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과연 옳은 것일까.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에 나왔을 때 다스와 BBK의혹이 쏟아졌다. 그 당시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고, 언론이 제대로 파헤쳤다면 이명박정부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전직 대통령이 네 번째로 감옥에 가는 불행한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권자는 어떠한가. 선거 캠페인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가 대중을 향해 BBK·다스와 관련이 없다고 부정하면서 “그건 모두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치자 상당수 대중들이 “옳소”라고 호응했다. 그때 “옳소”라고 외치며 열광했던 대중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의혹을 둘러싸고 프랑스 국민과 언론도 우리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지난 주 두바이에 머물다 불법정치자금·돈세탁·탈세 등 혐의로 본국으로 긴급 소환된 후 이틀 간 조사를 받았다. 2007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사르코지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650만 유로(한화 약 87억원)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유례없이 전직 대통령이 구금되어 조사를 받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프랑스 언론이나 정치권, 국민의 태도는 우리와 사뭇 달랐다. 국민들은 단칼에 단죄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예의주시했다. 비난 여론도 들끓지 않았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사르코지의 적수들은 쉽게 발언하려 들지 않았고, 단지 공화당의 거물급 정치인들만이 조심스럽게 페이스북을 통해 사르코지를 응원하고 있는 양상이다.
사르코지 정부에서 가족부 장관을 지낸 나딘 모라노(Nadine Morano)는 “니콜라 사르코지는 릴리안베탕쿠르 사건에서 무혐의를 받았다. 2018년 수사를 받고 있는 그를 믿는다. 그의 결백이 곧 드러날 것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공화당 부대표 기욤 펠티에르(Guillaume Peltier)도 “친애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당신은 우리의 애정어린 지원을 의지해도 되고, 수많은 사람들은 당신이 프랑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공공복지 서비스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삶을 헌신했는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보르도 시장인 알랭 쥐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르코지에게 연민의 뜻을 전했다. 그는 사르코지가 수사를 받고 풀려난 직후 내놓은 해명을 보고는 <TF1>방송에 출연해 “투혼적으로 일관성있게 주장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진실이 밝혀지길 희망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두 전직 대통령의 스캔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렇게 다르다. 물론 한국과 프랑스는 정치인에 대한 평가기준과 투표 행태 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한쪽은 이러한데 다른 한쪽은 왜 그렇지 않느냐’는 식의 비교는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례를 언급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치·사회적 사건을 단칼에 단죄하지 말고 좀 더 이성적으로 지켜보자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다. 한국 사회가 아슬아슬한 것은 승자에게는 너무 점수가 후하고 패자에게는 오싹할 정도로 몰인정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승자의 허점은 보려 않고 그 승자가 어느 날 패자가 되었을 때 속옷까지 벗겨 던져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정치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그만의 일로 보지 말고 우리 모두의 일로 받아들이는 한편 내부의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통찰하는 토론의 장을 열자고 감히 제안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