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미투운동, 여성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입력 : 2018-03-06 오전 6:00:00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문재인정부는 이 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미투(Me Too)’ 운동으로 장안이 떠들썩한 요즘, 여성인권 증진 차원에서 특별한 이벤트 하나쯤은 선보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한 달 넘게 확산되고 있는 미투운동은 그간 우리 사회의 곪아터진 부분을 여실히 드러냄은 물론 또 다른 적폐청산을 기대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개 방식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간 지극히 보수적인 남성 중심사회였던 까닭에 누적되어 온 고질적인 성희롱·성추행 사건을 유명인들의 갑질로만 간주하고 그들을 단죄하는데 급급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사회 전체의 문제로 삼아 그동안 유린되어 온 여성인권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그 방법은 무엇인지를 놓고 근본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사태의 핵심을 찌르는 논의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 사회적 논의를 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만약 가해자들이 유명 예술인이라면 그들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중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한 예로, 당사자 중 한 명인 고은 시인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에 대한 증언이 엇갈리는 가운데 그 동안 평가받아온 그의 작품들을 깡그리 부정하고 문학관마저 폐쇄해 버린다면 우리는 먼 훗날 후회할지도 모른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대의 정서와 분위기, 사회적 통념들이 있었다. 이는 법의 진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당시 용인된 도덕적 개념을 지금의 기준으로 단죄해야 할 때는 우선 방법론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누군가의 폭로로 SNS가 요동치고, 거기에 여론이 편승해 속전속결로 공세를 펴는 식의 접근은 이제 자제되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성희롱·성추행·성폭력 사건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성차별과 성폭력에 관한 법 제정의지를 밝혔다. 그는 먼저 정부 내에 남녀평등 전담부서를 두고 마를렌 시아파(Marlene Shiappa) 국무장관을 수장으로 임명했다. 시아파 장관은 한 달 전 에르테엘(RTL: Radio Tele Luxembourg)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폭력금지 법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주 수요일 시아파 장관은 약속대로 성차별과 성폭행에 대한 법률안을 발표했다. 그는 엘세이(LCI: La chaine Info)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3월7일 국무회의에서 첫 토론을 하고 그 다음날인 8일 각부 공동위원회(comite interministeriel)에서 협의한 후, 국무회의에서 본문을 소개하겠다”고 향후 진행방향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또한 “여름 전 법률의 본문채택을 예상하고 설계하겠다”고 덧붙였다.
 
법안은 특히 거리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을 겨냥하고 있으며 성행위 합의에 있어 최저 나이를 몇 살로 할지 확정하는 것도 주요 내용이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에 대한 벌금은 최소 90유로에서 최대 750유로로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공공장소의 성희롱에 대한 보고서가 시아파 장관과 제라르 콜롱브 내무부 장관, 니콜 벨루베 법무부 장관에게 각각 제출되어 각 부처 간 원활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시아파 장관은 “만약 정부가 제시하는 법이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다면…분명히 예방이나 교육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남녀평등에 대한 의식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벨루베 장관은 시아파 장관의 법안이 긍정적으로 진전되었다고 평가하고 힘을 합칠 것을 약속했고, 콜롱브 장관도 “성폭력 희생자들이 여름부터는 피해를 쉽게 고발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성희롱·성폭력으로 희생되는 여성들을 막기 위해 프랑스 정부 내 세 개 부처가 합심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지금 전개되고 있는 미투운동을 여성인권 향상의 기회로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대로 된 플랜을 세우고 전담부서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 지금처럼 컨트롤타워도 없이 우왕좌왕한 채 여론에만 끌려간다면 미투운동은 필시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곪아터진 과거의 환부를 도려내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미투운동은 한때 지나가는 태풍으로 그치고 말 확률이 크다. 정부가 지금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여성인권의 문제를 주도하고 플랜을 짜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척결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시아파 장관의 말처럼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그것은 분명히 예방이나 교육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미투운동이 처벌을 넘어 남녀평등을 위한 의식화 기회로까지 활용되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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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