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2001년 3월 보험소비자연맹으로 출발한 금융소비자연맹은 어느덧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또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한 금융소비자 보호단체가 됐다. 금융소비자로부터 민원을 접수하고 그 민원의 타당성을 검토해 보험사에 피해 회복을 요구하거나 민원인을 설득하는 게 주된 일이다. 상대적 ‘갑’인 금융사가 피해 회복을 거부할 때에는 중재가 소송으로 가기도 한다. 무려 3년을 끌어 승소한 자살보험금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소비자연맹의 6대 대표를 맡고 있는 조연행 대표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여전히 소비자 보호에 뒷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을 통해 소비자가 절대적 ‘을’인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하 일문일답.
-소비자 보호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평가하자면.
예전엔 금융소비자 보호란 개념조차 없었다. 정부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공급자 관점에서 금융을 이끌었다. 소비자는 희생하고 손해를 보는 게 당연한 존재였다. 극단적인 사례가 근저당 설정 비용이다. 금융기관은 이자를 받고 대출해주면서 담보를 잡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수십년간 소비자에 전가해왔다. 금융거래가 시혜적 성격으로 인식돼 고객은 그저 금융기관에서 대출만 해주면 ‘감사합니다’ 했다. 과거보단 좋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금융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공급자 위주의 법과 제도, 정책, 약관들이 지금도 안 고쳐지고 있지 않은가.
-은행을 예로 들었는데, 정작 은행들은 건전성 규제 등으로 힘들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금융산업은 허가를 받아야 영업이 가능하다. 허가에는 소비자 권익 등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사회는 금융기관이 수수료 등 비용을 합리적으로 부과하고, 그만큼 이득도 합리적으로 보길 기대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과도한 이자와 수수료 부담을 지움으로써 매년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 그럼에도 힘들다는 건, 공공성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핑계를 보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그런데 정말로 힘든 업권도 있긴 하다. 카드업계의 경우 작년 순익이 반토막 나지 않았나.
수수료 문제인데, 지금처럼 정부가 업계에 압력을 넣어 수수료율을 내리도록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시장 경쟁을 통해 합리적인 선에서 수수료율이 조정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강압적으로 수수료율을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기존에 시장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담합적 요소가 있다면 제재하고, 그럼에도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거나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업권도 문제지만, 특히 보험업에서 소비자 권익 침해나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게 불완전판매인데, 뿌리를 건드려야 한다. 설계사 교육을 강화한다? 관리를 강화한다? 그런 수준으론 불완전판매를 없앨 수 없다. 기본적으로 독립법인대리점(GA)이든 설계사든 수수료를 받기 위해 상품을 판매한다. 그런데 그 수수료가 초회보험료의 10배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론 종신보험이 그렇다. 눈에 불을 켜고 팔 수밖에 없다. 병력이 있어도 숨기고, 타사 계약사항도 알리지 않고 일단 계약부터 성사시킨다. 그 과정에서 불완전판매나 민원이 발생한다. 신용길 생명보험협회장이 총대를 메고 말했지만, 판매수수료 체계는 개선이 필요한 게 맞다. 이와 함께 불완전판매로 인한 계약 해지 시 보험사도 손해를 보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가입기간 1년이 안 돼 계약이 해지되면 설계사는 받은 수수료를 뱉어내야 하고, 소비자는 해지환급금에서 해약공제를 떼인다. 보험사들이 현재 판매수수료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과잉경쟁으로 불완전판매나 계약 해지가 발생해도 손해를 안 보기 때문이다.
-그나마 통계상으론 불완전판매 민원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착시가 아닐까 싶다. 제도적 변화가 없는데 어떻게 민원이 줄어들겠나. 보험사와 소비자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고, 소비자가 보험을 해지하고 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제 불완전판매가 줄었는지, 아니면 불완전판매는 그대로인데 민원만 줄었는 따져봐야 한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게 뭐라고 보나.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지금 제출돼 있는 법안들을 보면 적합성의 원칙 등 소비자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들이 들어가 있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고, 입증 책임을 금융사가 지게끔 해야 한다. 여기에 집단소송 내지는 단체소송을 도입해야 한다. 지금은 소송을 건 사람만 손해액을 배상받는데, 소송을 거는 사람은 전체 피해자의 100분의 1도 안 된다. 배상액도 턱없이 작다. 금융사 입장에선 소송에서 패소해 배상해도 이익이다.
-거기에 제대로 경쟁이 되려면 금융사가 지금보다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인터넷은행이 생기고 얼마나 편해졌나. 계좌번호를 몰라도 송금할 수 있고, 그것도 24시간 내내 수수료 없이 가능하니. 그런 게 경쟁의 시작이다. 좀 더 많은 메기를 풀어놔야 한다. 특히 투명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은행은 금리, 보험은 수익률 등이다.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정보가 제공돼야 금융사·상품별 비교가 가능하고, 그래야 경쟁도 되지 않겠나.
-연맹의 활동에 대한 질문이다. 최근 어떤 활동들을 주로 하고 있나.
요즘엔 가상화폐 거래 피해와 상조 민원, 보험 약관 등에 집중하고 있다. 민원이 접수되면 민원의 타당성과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누구의 잘못인가를 판단한다. 금융사의 잘못이라면 해당 보험사에 피해 회복을 요구하고, 소비자 잘못이라면 그 소비자들 설득한다. 이 정도 수준에서 해결이 안 되면 언론 등을 통해 부당한 행위를 한 금융사를 공개한다.
-민원인 설득이 잘 되나. 개개인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우리 역할 중 하나기도 하고 생각보단 이야기가 잘 된다. 소비자들이 보험사나 금융감독원 얘기는 잘 안 믿으려고 해도, 우리 얘기는 비교적 잘 들어준다.
-연맹이 금융소비자단체 중에는 가장 먼저 만들어졌는데, 그동안 해왔던 활동 중에 가장 뿌듯했던 게 있다면.
우리와 가장 많이 다퉜던 금융사가 삼성생명이다. 소송에서 몇 번을 붙어서 우리가 다 졌는데, 딱 하나 이겼다. 그게 자살보험금 소송이다. 10년 전, 20년 전에 자살한 가입자의 유가족들에게 보험금이 지급됐다. 우리를 통해 소송을 진행했던 80명은 모두 1억~2억원씩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이후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했거나 보험금을 청구한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전체 보험금 지급액이 2조~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연맹의 내부적인 과제가 있다면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그렇듯 재정이 튼튼해졌으면 한다. 회원 수는 15만명이지만 늘 춥고 배고픈 게 현실이다. 재정이 튼튼해야 사업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나 소비자 보호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현재 소비자권익증진기금 신설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런 지원들을 통해 경상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