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보직 변경 이후 스트레스를 받다가 돌연사 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연이어 내려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박양준)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7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지난 1990년 5월 B방송에 입사해 보도직군 기자와 지방 방송국 관리직으로 근무한 A씨의 남편 C씨는 2013년 6월부터 본사 편성제작국 라디오 편성부 PD로 근무했다. 하지만 C씨는 2015년 2월 B방송 본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구토하면서 기절했고, 구급 차량에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A씨는 C씨가 라디오 PD 업무를 맡아 낯선 업무와 근무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 과로 등으로 사망했다면서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C씨가 2013년 6월부터 서울 본사에서 맡게 된 PD 업무는 오래전에 경험한 것이거나 부수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을 뿐인 일인 데다가 당시 54세로 나이가 많았던 C씨는 최신 장비의 조작에도 미숙했으므로 업무 적응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서울 전보 이후 점차 PD 업무에도 적응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2014년 12월부터 시행된 가을 개편부터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 생방송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되면서 다시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 "출퇴근 시간에 생방송을 진행하게 돼 많은 긴장과 책임을 느끼면서 정기적인 초과근무를 하던 중 2015년 1월부터는 봄 개편을 앞두고 신설 프로그램의 기획안 작성·보고, 회의 등 업무를 추가로 부담하게 됐다"며 "그 과정에서 학교 후배이자 상사인 D국장과의 의견충돌 등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C씨가 사망하기 전날 D국장이 생방송 도중에 출연진 교체를 요구한 것은 업무상 지시에 포함될 수도 있지만, C씨 입장에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즉 C씨는 긴장상 태에서 출퇴근 시간의 생방송 2개를 진행하면서 매일 초과근무까지 해야 했던 2014년 12월부터 사망 시점까지, 봄 개편을 앞둔 2015년 1월 신설 프로그램 기획·제작 준비 업무를 추가로 부담하게 된 데다가 사망 전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등 약 2개월에 걸쳐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황으로 인해 고지혈증이란 기존 질병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함상훈)는 E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순직유족보상금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도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E씨의 남편 F씨는 2014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G법원 사무국 형사단독과, 형사합의과에서 형사참여업무를 담당한 후 민사집행과 경매5계로 보직 발령을 받았지만, 발령 후 12일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씨는 공무원연금공단이 F씨의 사망과 공무 수행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F씨가 2016년 7월11일 보직 변경 전 동료 직원들과 가족에게 경매 업무에 관해 두려움을 토로했던 점, 일반적으로 경매 업무는 재판 업무와 달리 금전을 다루기 때문에 업무상 스트레스가 심한 것으로 알려진 점, F씨는 보직 발령 이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심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F씨는 낯설고 과중한 업무에 대한 부담감으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F씨는 경매 업무를 담당하기 이전에 정신적 치료를 받았던 경력이 없고, 대인관계나 가정생활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바 경매 업무 담당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던 점, 경매 업무 담당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적응장애와 경도의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점을 고려하면 F씨에게 발현된 정신질환은 새로이 맡게 된 경매 업무로 인한 것이라고 추론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업무 적응을 하지 못한 사정을 고려해 보직을 기타집행사건 접수 업무로 변경하고 병가를 내도록 했지만, F씨는 병가 중에도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출근하고 주변에 인사상 불이익에 관한 걱정을 호소하고 업무가 변경됐는데도 잘 해내지 못하면 끝이란 생각을 하는 등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고 두려워하던 중 자살했다"며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F씨의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은 그 무렵 더 견디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게 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