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생태계, 재기창업부터 허하라)②"성실실패 존중해야"…제도·문화 개선 시급

경직된 재창업 '성실경영평가'…민간금융 연대보증도 개선 필요

입력 : 2018-05-2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의 힘은 수많은 실패에서 비롯된다. 3번, 4번은 기본이고 7번 실패하고 다시 창업한 경우도 많고 M&A(인수합병)를 경험한 스타트업도 많다. 반면 한국 스타트업은 거의 대부분이 초기 단계다. 아무리 삼성같은 대기업에서 10년을 일하고 나왔다 하더라도 창업 쪽에서는 경험이 전무한 루키일 수밖에 없다. 실패를 환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사업하면서 실패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더 많은 실패를 할 수 있도록, 실패에서 배운 게 존중될 수 있는 구조가 돼야한다." (김유진 스파크랩스 대표)
 
글로벌 창업지원기업인 스파크랩스의 김유진 대표는 최근 창업 안전망을 주제로 열린 벤처스타트업 관련 포럼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김 대표의 말에는 국내 벤처창업생태계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압축돼있다. 실패를 딛고 재기하기 어려운 제도적 환경과 실패에 대한 관용문화의 부재로 요약된다.
 
이른바 '성실실패' 기업가의 재도전 기회가 법적으로 지나치게 제약돼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재창업 지원 관련 기본 틀은 정부의 '재창업자 성실경영평가 제도'에 따라 일정 요건을 충족한 기업가를 대상으로 정부가 재창업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고의부도 여부, 분식회계 등 법률위반 여부, 부당해고 등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 등을 따져 정부가 성실실패자를 가려낸다는 취지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 자체의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업계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제도를 시행한지 꽤 지났지만 이 요건을 만족해 재도전에 나선 기업가는 200~300명뿐"이라고 말했다. 성실실패한 기업가의 신속한 재도전 기회가 어렵고, 신생기업과 차별화되는 지원 제도 탓에 재창업을 꺼리는 악순환이 된다.
 
현장의 기업인들이 실제 겪는 창업 저해 요인으로는 창업자 연대보증 문제가 가장 많이 꼽힌다. 창업 후 실패하면 연대보증으로 신용불량자가 되기 십상인데 이럴 경우 재기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신용불량 정보가 관련 신용정보기관에서 '블랙리스트'로 광범위하게 공유돼 재창업자에게는 낙인효과가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정부의 제도 개선으로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책금융기관에서 창업자 연대보증은 거의 사라졌지만 민간 은행에서는 연대보증 요구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창업자들은 정책금융 융자만 받는 게 아니라 민간 금융시장에서도 융자를 받는다. 회사가 성장하려면 자금은 필수적"이라며 "정책금융기관 연대보증이 없어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상당수의 기업인들은 민간 금융에서 연대보증에 걸려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민간 영역인 시중 은행들에게 정부가 연대보증 면제를 강요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또한 이 부분은 금융산업 낙후성과 연결돼있는 문제로, 대부분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시중 은행들의 현실에서는 연대보증 면제가 당장 확대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민간은행에 연대보증 면제 참여를 유도하되, 금융기관 리스크 완화방안 등 대책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출 융자에 의존하는 창업이 아니라 미국처럼 투자 위주로 창업 활성화의 방향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법이나 제도적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도 간과할 수 없다. 정상적인 실패에 대한 관용의 부재 문제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창업 실패 횟수는 평균 2.8회인 반면 한국은 1.3회다. 실패에 관대하지 못한 사회분위기 속에 한 번 실패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은 8차례 실패를 딛고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창업에서 실패는 상수인데도, 국내서는 창업 실패를 용인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마윈이 국내에서 창업했다면 성공했을까? 고시촌에 들어가서 월세 50만원으로 살며 생계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내에서는 기업인 실패에 관대하지 못한 사회분위기가 만연해있다"고 비판했다.
 
벤처창업계에선 실패를 딛고 재기하기 어려운 제도적 환경과 실패에 대한 관용문화의 부재가 국내 창업생태계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오전 KDB산업은행 스타트업IR센터 '실패를 허하라!(창업안전망)'를 주제로 열린 2차 혁신벤처 생태계 정기포럼. 사진=벤처기업협회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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