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영지·김광연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특정 재판을 놓고 거래를 벌였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전국의 일선 판사들이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가정법원, 인천지법, 대구지법 등은 4일 판사회의를 열어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발표에 따른 입장과 이에 대한 의혹 해소를 위한 방안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부장판사, 단독판사, 배석판사 회의가 각각 진행됐다. 단독판사 회의는 오후 12시에 시작돼 오후 2시반께 가장 먼저 마쳤고,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사태에 대한 입장표명이 의안으로 진행됐다.
단독판사들은 “사법행정권 남용사태로 재판독립과 법관독립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법행정권 남용사태에 대한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결의했다.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은 향수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개시될 수 있는 재판에 관해 엄정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단독판사 83명 중 50명이 회의에 참석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배석판사 회의와 서울고법 판사회의도 이날 열린 가운데 오후 늦게 결의 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판사들도 오전 회의를 통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하여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며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드러난 미공개파일 원문 전부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이번 조사에서 밝혀진 사법행정권 남용행위가 법관의 독립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현저히 훼손시켰음에 인식을 같이하고, 이에 대하여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행위와 같은 사안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가정법원에서는 전체 단독판사 18명 중 12명이, 배석판사의 경우 10명 중 8명이 회의에 참석했다.
인천지법에서는 단독판사 49명 중 29명이 회의를 소집해 사법행정권 남용사태가 다시 반복돼선 안된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들은 “법관으로서 일련의 사법행정권 남용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드러난 모든 의혹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의뢰 등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모 판사는 "대체로 의견 일치를 보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구 수정 등 이유로 시간이 좀 소요됐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판사회의를 시작한 곳은 의정부지법으로 지난 달 31일~ 이달 1일 단독, 배석판사 회의를 통해 엄정 수사를 요구했다. 춘천지법도 원주·강릉·속초·영월 등 4개 지원 소속 법관 70여명이 전원 참석해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5일 수원지법과 부산지법에서도 판사회의가 계획돼 있다. 판사회의는 대법원 '판사회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라 소속 법원 구성원인 판사 5분의 1 이상 또는 의장의 요청에 의해 판사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지난 1월 법원행정처 판사동향 파악 문건이 드러나면서 일선 법관들의 판사회의가 처음 열렸고 전국 법원으로 확산된 바 있다.
같은날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위원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이 확산되면서 4일 각급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개최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의 모습. 사진/뉴시스
최영지·김광연 기자 yj11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