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지하 기자] 국토교통부가 진에어의 면허취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미뤘다. 법리 검토 결과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과 '취소가 곤란하다'는 상반된 견해가 도출됐다는 이유다. 하지만 김현미 국토부 장관까지 최근 공개 석상에서 이달 내 결정하겠다고 공언했던 만큼 여론의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렬 국토부 2차관은 29일 오후 1시30분 정부세종청사 국토부 기자실에서 '진에어 항공법령 위반 관련 조치계획' 브리핑을 열고 "3개 법무법인에서 법리검토를 진행한 결과 외국인(조현민) 등기임원 재직 사실은 면허결격 사유에 해당"한다면서도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과 이미 결격 사유가 해소된 현 시점에서는 취소가 곤란하다는 상반된 결론이 도출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공법령에서 정한 절차인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진에어 청문, 면허자문회의 등을 오늘부터 시작해 최종적으로 면허 취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이 과정에서 진에어 근로자 등의 의견도 충분히 청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국토부가 진에어의 면허취소 관련 법률자문을 맡긴 법무법인은 총 3곳이다. 이 중 2곳에서는 면허취소 의견을 냈다. 나머지 한 곳에서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진에어의 등기이사로 불법 재직한 과거 사실을 가지고 현재 시점에서 면허를 취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내용의 반대 의견을 냈다.
국토부는 진에어에 대한 청문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청취 기간을 2개월 정도로 보고 있다. 면허자문회의는 항공정책관이 위원장으로, 민간 위원들이 절반 이상 채워진다. 전체 풀은 30명 정도로 항공, 안전, 경영, 회계,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되며, 이 중 감사담당관 입회 하에 7명을 뽑아 회의를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쟁점이 부상할 경우 국토부의 최종 판단은 더 늦어질 전망이다.
김정렬 국토교통부 2차관이 2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진에어 항공법령 위반 관련 제재수위를 결정하기 위해 청문 절차가 진행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국토부가 이날 진에어의 면허취소 최종 판단을 늦추는 것을 두고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결론을 내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면허를 취소할 경우 1700명에 이르는 진에어 직원들의 고용 불안이라는 문제가 발생해 자칫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대의 결론을 내리기도 국토부 입장에서는 다소 난처한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25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진에어 (면허취소 여부는) 우리들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법률 자문도 받고 내부 대책도 여러번 거쳐 거의 마지막에 다 왔다"며 "김 2차관이 6월 안에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며칠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이날 브리핑 시작 전까지 다수의 매체에서 면허취소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김 2차관은 이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높았던 데다 항공법령 위반과 관련한 공무원 문제, 항공운송사업면허취소 관련 법적절차 개시, 유사사례 방지를 위한 항공사 관리감독 강화, 이번 사건 근저에 있는 전반적인 항공사의 갑질 근절을 위한 관련 부처와의 종합 대책을 함께 발표하는 게 타당하다고 봤다"며 양해를 구했다.
항공사업법 제7조 제5항은 '면허를 취소하려는 경우 관련 전문가 및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들어 결정해야 한다', 항공사업법 제74조는 '면허를 취소하려면 청문을 해야 한다', 항공사업법 시행규칙 제9조는 '관계기관과 이해관계자 의견청취' 등이 명시돼 있다.
국토부는 또 항공운송면허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외국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진에어의 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면허변경 업무를 처리하면서 이를 확인하지 못한 국토부 담장자 3명(과장 1명·사무관 1명·주무관 1명)에 대해 형법상 직무유기죄로 수사의뢰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토부는 항공사의 '갑질' 근절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과 함께 '항공산업 체질개선 종합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공정위 주관으로는 항공사의 '불법·부당 거래'를 점검·조치한다. 복지부(국민연금)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오는 7월 중 도입해 기금운용위원회 논의를 통해 기업·주주가치 훼손 기업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 근절 종합대책'을 시행한다. 국토부는 항공사 겸직이나 경영간섭과 '갑질·폭행' 근절을 위해 대표이사·등기임원 자격 및 경력제한 기준을 신설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항공사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내놨다. 우선 안전관리 미흡한 회사에 대해 장비·인력 등 분야별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위반 사항에 상응하는 과징금 부과 등을 조치할 계획이다.
또 대한항공이나 진에어 같이 갑질이나 근로자 폭행 등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항공사에 대해서는 운수권 배분시 불이익을 주고, 슬롯(운항시간대) 배분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항공사업법령 개정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면허 담당자의 교육을 강화하고 안전 감독관 인력을 확충하는 등의 국토부 내부 운영체계도 대폭 재정비할 계획이다.
앞서 올해 4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이른바 '물컵 갑질'로 사회적 공분을 샀다. 이어 지난 2010~2016년 진에어의 등기이사로 6년간 재직한 사실도 드러나며 위법 논란이 불거졌다. 게다가 이를 파악하지 못했던 국토부의 부실한 관리감독도 문제가 됐다.
조 전 전무는 1983년 하와이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자다. 현행 항공사업법과 항공안전법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항공사 등기이사직을 수행할 경우 항공사업 면허 결격 사유가 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외국인을 등기임원으로 선임했을 때 국토부 장관은 해당 항공사를 상대로 면허 또는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김 장관은 조 전 전무의 진에어 위법 등기이사 재직 논란과 관련해 즉시감사를 지시했으며, 국토부는 법무법인 등을 통해 면허취소 여부 등의 행정처분을 검토해 왔다.
세종=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