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는 그만두고 직업을 갖는 게 어때?”
한 청춘의 삶이 세상의 시선에 짓눌렸다.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다. 이 악물고 버텨온 지난 세월이 한꺼번에 부정 당하는 듯 했지만, 그는 다시 일어서야 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꽤 가혹하게 느껴졌어요.”
5일 이메일로 만난 일본 록 밴드 세카이노오와리의 보컬 후카세 사토시는 데뷔 전 지난 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또래의 친구들은 이미 일을 하고 있었고 세상은 그들 만의 잣대로 ‘포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계속 활동을 하려면 신념이 있어야 했어요. 당연히 걱정은 많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음악이 결국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일본 록 밴드 '세카이노오와리'.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2005년 후카세와 소꿉 친구들(나카지마 신이치<기타>·후지사키 사오리<피아노>·러브<DJ>)이 함께 결성한 밴드는 개개인의 ‘절망’ 속에서 탄생했다. 후카세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순탄치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고, 피아니스트인 후지사키 사오리는 학창시절 극심한 왕따를 겪었다. 가혹하고 아픈 청춘의 나날이었지만 ‘음악’을 구심점 삼아 뭉쳐보기로 했다. 밴드명 ‘세카이노오와리’는 우리말로 ‘세상의 끝’이란 의미다.
“정말 세상의 끝이라 느낄 만큼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밴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거죠. 제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시점에서 다시 일어서야 했고, 그때 줄곧 저를 응원해 준 친구들과 음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상기하게 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름이죠.”
2011년 메이저 데뷔 전에는 ‘Do-it-yourself’ 정신으로 움직였다. 공연장 ‘클럽 어스’를 짓기 위해 멤버들 각자 1억에 가까운 빚을 냈고, 음악 외의 일도 병행해야 했다. 당시 “밴드를 그만두고 직업을 가지라”던 주위의 가혹한 시선과 맞서 싸워야 했다. 곁에 있는 멤버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신념 만이 이들의 유일한 무기였다.
세카이노오와리는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공연 연출로도 유명하다. 사진/위키피디아
2011년 메이저 데뷔 싱글 ‘INORI’를 발매하면서부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불과 3개월 만에 ‘일본공연의 성지’라 불리는 도쿄 부도칸에 입성했고, 4년 만인 2015년엔 일본 최대 규모 닛산 스타디움에서 이틀간 14만 석의 공연을 매진시키는 진기록을 세웠다. ‘환상의 생명’, ‘RPG’, ‘RAIN’, ‘SOS’ 등 밴드의 대표곡들은 한국과 홍콩, 대만, 미국, 영국 등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다.
록 편성을 기반으로 하되, 최근엔 팝과 일렉트로닉으로 장르적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후카세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 다양한 스타일, 다양한 모습에서 밴드 만의 독특함이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우리는 최근 작품들의 키워드를 ‘카멜레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몽환적인 사운드에 가사는 주로 평화, 죽음, 절망, 우주 등 심오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들. 공연 때는 이를 동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무대로 꾸며 찬사를 받는다.
“(우리의 메시지가) 뭔가 중요한 것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우리의 삶에서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해 쓴 노래들이죠. 삶에서 어떤 한 장면을 꺼내 보더라도 그 속에는 기쁨, 슬픔 등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 있잖아요. 삶의 모든 측면을 아우를 수 있도록 음악 외에 뮤직비디오나 무대 연출, 앨범 커버 등 ‘비주얼’을 신경쓰는 건 서로 연관된, 큰 그림을 만드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에픽하이와 세카이노오와리. 사진/소니뮤직·뉴시스
밴드는 2012년 지산 밸리록 페스티벌로 처음으로 내한했고, 이후 단독공연 등을 이어오며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힙합그룹 에픽하이와 함께 작업한 ‘슬리핑 뷰티(Sleeping Beauty)’를 공개하기도 했다.
에픽하이와 작업에 대해 후카세는 “에픽하이의 ‘본 헤이터(BORN HATER)’ 뮤직 비디오를 처음 보고 전율을 느꼈을 만큼 그들의 스타일을 무척 좋아했다”며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큰 영감이 되고 대단히 흥미롭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오는 7월27~2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 ‘사운드 시티(Sound City)’에는 마지막날 헤드라이너로 선다.
“한국은 저희가 정말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에요. 온다는 사실 만으로도 굉장히 신이 나 있는 상태죠. 특히 최근 내한에서 우리의 응원봉을 들고 있던 장면이 정말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공연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지난해 2월 세카이노 오와리의 첫 단독 내한공연 현장.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뉴시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