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빨라진 재계, 남매경영이 대세?

CJ·신세계·삼성 등 주요 보직 포진…아들은 '주력 계열사'·딸은 '문화·레저' 업종

입력 : 2018-07-17 오후 4:25:06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재계가 오너 3·4세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남매 경영 체제도 잇달아 등장해 눈길을 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딸들이 경영의 한 축을 맡는 사례들이 늘고 있는 것. 대개는 아들이 주력 계열사를 물려받고 딸은 문화·레저 관련 업종을 맡는 형태다. 남매 경영이 대세로 주목받는 데에는 핵가족화에 따른 오너 일가의 자식 수 감소의 영향이 크다. 또한 기본적으로는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하지만 복잡한 그룹 경영을 아들 혼자 책임지기보다는 누나 또는 여동생들이 사업부문을 맡아 지원하는 것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남매경영 체제가 늘고 있다.
 
이경후 상무, CJ ENM으로 국내 복귀
지난 1일 이재현 CJ 회장의 장녀 이경후 상무는 CJ㈜ 미국지역본부 마케팅팀장에서 CJ ENM 브랜드전략 담당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2016년부터 CJ㈜ 미국지역본부에서 근무하며 북미 사업 전반의 마케팅 전략을 맡아온 지 2년 만의 국내 복귀다. 이 상무의 국내 발령을 두고 재계에서는 CJ의 경영 승계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지주사와 식품 계열 사업을 지휘하고, 이경후 상무는 미디어와 커머스 사업을 주도하는 형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CJ그룹에서는 "이재현 회장이 아직 젊고 직접 경영 현안을 챙기고 있는 만큼 경영 수업의 일환으로 봐달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협력 구도가 대를 이어 나타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경후 CJ ENM 상무(왼쪽)와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 사진/CJ
 
이경후 상무가 근무지를 옮긴 CJ ENM은 CJ오쇼핑과 CJ E&M이 합병한 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디지털 신규사업을 포함해 온라인, 모바일, 오프라인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융·복합 콘텐츠커머스 기업으로 발돋움하고자 한다. 2021년까지 11조원대의 매출 달성을 비전으로 한다. CJ ENM은 E&M 부문과 오쇼핑 부문으로 나뉘는데, 이 상무는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허민회 CJ ENM 대표 직속 조직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상무가 경영 수업을 넘어 경영 능력을 검증받는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는 배경이다. 
 
신세계, 정용진·정유경 '투톱' 완성
신세계 그룹도 남매 경영의 대표적 사례다. 정용진 부회장이 지난 2010년 신세계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일찍이 후계자로 낙점돼 그룹을 이끌어왔다. 그러던 중 2015년 말 정유경 당시 부사장이 총괄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남매 경영의 막이 올랐다. 이마트 부문은 정용진 부회장이, 백화점 부문은 정유경 총괄사장이 맡는 책임 경영 체제다. 이들 남매는 각자의 영역에서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며 그룹의 사세도 키우는 시너지를 내고 있다. 신세계는 지난해 처음으로 1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유통부문만 주력하는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룩한 성과로 지난 1997년 삼성에서 분리된 지 약 20년 만이다.
 
스타필드 고양 오픈식에 참석한 정용진 부회장(왼쪽)과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오픈식에 참석한 정유경 총괄사장. 사진/뉴시스, 신세계백화점
 
정용진 부회장은 유행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유통업계에서 개성있는 트렌드세터로 평가받는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피코크, 노브랜드, 스타필드 등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유통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타필드 2호점인 코엑스몰에 만물잡화점 개념의 '삐에로 쑈핑'을 론칭했다. 신선식품부터 가전제품까지, 천냥 코너부터 명품 코너까지 4만여가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신개념 매장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용진 부회장은 공격 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의 첫 독자 브랜드 부티크 호텔인 '레스케이프'가 이달 서울 퇴계로에 문을 열며, 하반기 중 안성에 스타필드 4호점을 신규 출점한다. 오프라인 뿐 아니라 온라인 채널도 강화한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로 나뉘어있는 온라인 사업부를 통합하고 이커머스 사업을 전담하는 신설회사를 설립해 그룹 내 핵심 유통 채널로 육성한다는 것. 2023년까지 연 매출 10조원을 달성해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백화점 부문을 전담하는 정유경 총괄사장은 면세점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롯데가 반납한 인천공항 제1터미널의 화장품·패션 2개 면세규역 사업권을 모두 획득했다. 2012년 부산 파라다이스면세점을 인수하면서 면세사업에 뛰어든 신세계는 롯데, 신라 등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사업 진출 6년 만에 3강 구도를 형성했다. 신세계 면세점은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흑자전환한 데 이어 올해는 매출 3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공식총수 이재용···호텔 이부진·패션 이서현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 등 삼남매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그룹 전반을 책임지고 이부진 사장이 호텔과 면세점 사업을, 이서현 사장이 패션 사업을 맡고 있다. 
 
지난 2016년 호암식 시상식에 참석한 (왼쪽부터)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가 삼 남매가 공식 석상에 함께 선것은 이날이 마지막이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일인으로 지정하며 공식 총수로 등극했다. 지난 2014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실질적 총수 역할을 한 지 4년만이자,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6년만이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리더로 삼성에 새 바람을 넣고 있다. 지난 4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전량을 매각해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으로 지목받는 '순환출자고리' 해소에 물꼬를 텄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을 직접 고용키로 해 그룹 창립 이후 지켜온 '무노조 경영'도 폐기했다. 또한 해외 시장을 꾸준히 돌며 인공지능(AI), 자동차 전장 등 미래 먹거리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아직 많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상고심이 남아있다. 검찰에서 수사 중인 노조 와해 의혹도 풀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내에도 투자를 많이 해달라"는 요청에도 응답해야 한다.
 
이부진 사장은 조용하면서도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0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된 이후 10년 가까이 호텔과 면세점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비즈니스 호텔인 신라스테이의 흑자전환을 이끌어냈고, 면세점 사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인천국제공항, 홍콩 쳅랍콕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등 아시아 3대 공항에서 모두 화장품과 향수를 판매 중이다. 그 중 가장 최근 문을 연 홍콩 쳅락콕국제공항 면세점에서는 영업 첫 분기인 올 1분기부터 흑자를 냈다. 또한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면세점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음에도 유통채널 확대, 비용 효율화 등 사업 체질 개선으로 안정적 수익을 창출했다.
 
금호아시아나, 전업주부 딸 낙하산 논란···한진, 물컵 갑질에 남매경영 종지부
기내식 대란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금호아시아나 그룹도 최근 남매경영 대열에 발을 들였다. 박삼구 회장의 딸 박세진씨를 금호리조트 상무로 발령한 것. 박 상무는 요리·관광 관련 학교를 졸업했지만 리조트 관련 경력이 전무해 낙하산 논란을 야기했다. 이에 박삼구 회장은 "그룹 내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면서도 "조그마한 기여라도 할 수 있도록 예쁘게 봐달라"고 말했다.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사장은 2002년 아시아나항공 자금팀 차장으로 입사한 뒤 14년 만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껏 논란이나 구설에 오른적이 없어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만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비행 시뮬레이터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삼구 회장의 그늘에 가려 경영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는 점도 약점으로 평가된다. 
 
한진은 조양호 회장의 차녀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이 총수 일가의 비리 혐의로 확대되며 남매 경영에 마침표를 찍었다. 조양호 회장은 지난 4월 조현민 전 전무의 갑질이 공론화 된 지 10여일이 지나서야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 조현민 전무를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조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만 현직에 남아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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