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정부가 그간 고수해 오던 3% 성장경로를 포기하고, 취업자 수 전망치도 절반으로 줄였다.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일자리 정책을 꾀하면 올해 취업자수 증가폭이 32만명일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한 지 6개월 만이다. 최근 고용지표를 포함한 경기지표들이 줄줄이 악화된 수치를 보이자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의 체감을 반영했다는 게 경제당국의 설명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저소득층 맞춤형 일자리·소득 지원대책' 등을 발표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 수정 경제전망치는 이미 예견된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줄곧 경제 운용에 우려를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 조사에서 저소득 가구인 1분위 소득이 8%로 역대 최대폭으로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온 이후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강도는 점차 세졌다. 지난 14일 결정된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되자 "이번 두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근간 중 하나가 최저임금 인상임을 고려했을 때 부적절한 발언이다.
당초 목표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내년에 적어도 15.2%를 올렸어야 하는데 10.9%에 그친 것은 사실상 '속도조절'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운운하며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걸림돌인 것으로 단정했다.
김 부총리가 가장 주시하는 지표는 고용동향으로 보인다. 현 정부가 일자리 정부인 만큼 고용 관련 지표가 정책을 만들어내는 경제수장으로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일 수 밖에 없다. 가장 최근 수치인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0만6000명 증가하는데 그쳤다. 전월 증가폭인 7만2000명에 비해서는 소폭 나아졌지만 겨우 10만명 대를 턱걸이한 수준이다. 5개월 연속 10만명대 이하 취업자수 증가폭을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경제수장에게 '아픈' 대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용직 근로자는 견조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6월 노동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고용보험 가입 취업자는 34만2000명 증가하며 3개월 연속 30만명대가 늘어났고, 1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전체적인 고용 상황이 나쁜 것과 별개로 '사회안전망에 들어오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경제수장은 나쁜 고용지표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최근 좋지 않은 경제여건을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지표는 대내외 환경 여건에 따라 언제든 나빠지거나 좋아질 수 있다"며 "특히 최근에는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인구구조적인 문제 등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을 통해 경제 패러다임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고용이 나빠지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전 교수는 이어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탓을 하기 전에 작년에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최소한 자영업 등 취약계층의 보완책을 함께 마련했어야 한다"며 "오늘 대책으로 내놓은 EITC를 작년에 했으면 올해 이렇게 고용이 악화되지 않았을 텐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전날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같은 지적을 했다. 문재인정부 경제팀이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의 걸림돌'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는 아주 상반된 인식이다. 글로벌 금리 인상 때문에 가계부채가 늘어난다든지 무역 분쟁 때문에 하반기에 여러 가지 리스크 요인이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소득주도 성장"이라며 "소득과 내수 증대를 통해 그동안 대기업 수출 주도 경제를 내수 중심으로 바꾸는 과감한 구조 개혁을 하라는 게 핵심인데 김 부총리는 혁신경제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무엇이 다른지 해명하고 프로그램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이낙연 국무총리도 "장관들이 부처의 일을 최고로 잘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최고의 국정이 되지는 못한다. 최고의 눈, 최고의 코, 최고의 입을 모아놓는다고 최고의 미남미녀가 되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고 김 부총리의 최저임금 발언에 대해 국정 전체 기조와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을 지적했다.
한편 이날 진보 지식인 323명은 '담대한 개혁 촉구 지식인 선언'을 발표했다. 지식인 선언 네트워크는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용으로 하는 '세 바퀴 경제'를 경제정책의 기조로 내걸고, 그 첫걸음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했을 때 큰 기대를 걸었다"며 "그러나 재벌 적폐를 청산하고 경제민주화를 정착시켜 '세 바퀴 경제'를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정부가 미적거리는 바람에 마치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 부진과 일자리 소멸의 주범인 양 호도되고, 그로 인한 경제적 약자들 간의 갈등이 부각됐다"고 주장했다.
세종=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