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우승컵을 차지한 프랑스는 축제의 환희에 젖었고, 30만 명의 인파가 순식간에 샹젤리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테러와 실업난으로 얼룩진 어려움을 잠시나마 잊은 채 서로를 얼싸안으며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를 합창했다. 그 장면을 TV로 지켜보는 필자도 가슴 뭉클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스포츠 경기의 지나친 경쟁이 국가주의를 낳고, 과도한 상업성을 불러일으키는데 왜 굳이 전 세계적인 대회가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품던 사람들도 스포츠가 저 정도로 국민을 결속시키는 힘이 있다는 사실 앞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축제가 그러하듯 굳이 재를 뿌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프랑스 축구팀의 우승을 놓고 세계 여러 언론과 정치인들이 “아프리카가 월드컵을 쟁취했다”고 입을 놀린 것이 그 예다.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을 거쳐 미국까지 언론은 물론 각계 지도자, 개그맨, 네티즌들이 프랑스의 우승을 ‘아프리카 대륙의 승리’라고 떠들었다. 남아프리카 출신 개그맨 트레버 노아(Trevor Noah)는 월드컵이 끝난 그날 밤 미국방송 ‘더 데일리 쇼(The Daily Show)’에서 “나는 정말 기쁘다! 아프리카가 월드컵을 쟁취했다. 아프리카의 승리다…이 보이들(프랑스 선수들)은 프랑스 남부를 산책하면서 이런 선탠을 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나이지리아와 세네갈을 물리친 아프리카의 대체팀이 되었다”고 희화화했다.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 베네수엘라 대통령 또한 “프랑스 팀은 아프리카 팀과 흡사하다. 사실상 승리한 것은 프랑스에 도착한 아프리카 이민자들로, (프랑스 팀은) 아프리카다…아프리카는 매우 천대받고,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아프리카 선수들 덕에 이겼다”라고 비공식 행사에서 말했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프랑스 축구팀, 그들은 골 족(프랑스 혈통)을 닮진 않았지만 프랑스인들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신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ra)는 “축구 명문인 세 개의 학교에서 선발된 백인들로만 구성된 독일과 이탈리아 팀에 비해 프랑스 축구팀은 매우 훌륭한 백인 선수들 몇 명에 혼혈 아프리카 선수권 보유자들로 가득 찬 팀”이라며 오바마의 해석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프랑스 민영방송 <유럽 1>의 스페인 특파원 앙리 드 나게리(Henry de Lagurie)는 바르셀로나에서 트위터를 통해 기자와 정치인들의 극단적인 코멘트를 보도했다. 그 중 하나는 스페인의 좌파 정당 포데모스 창설자의 발언이었다. “흑인들이 월드컵을 이겼다. 유럽은 아마도 배로 도착한 사람들이 구할 것이다. 그들 중 틀림없이 축구 천재가 한 명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을 놓고 전 세계에서 야단법석이다. 사실 이번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23명 중 2명만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카메룬에서 태어난 사뮈엘 움티티와 콩고에서 태어난 스티브 만단다를 제외한 21명의 선수들은 아프리카와 아랍에서 이민 온 가정의 아들로 프랑스 땅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프랑스 대표팀의 월드컵 승리를 ‘아프리카의 승리’라며 얄궂게 바라보는 시선은 또 다른 인종주의의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프랑스 월드컵 축구팀의 인종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인종을 작위적으로 배치해 팀을 구성한 것이 절대 아니다. 실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기량 있는 선수들을 공정하게 선발했다.
따라서 우리도 프랑스 월드컵 팀을 보면서 생각해 볼 점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이른바 ‘흙수저’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렸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실종된 한국사회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이런 우리사회에 프랑스의 월드컵 승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 축구팀의 흑인 선수들은 상당수가 흙수저다. 그들이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스포츠였다. 따라서 그들은 상상 이상의 각오로 스포츠에 몰입했다.
흑인들이 각종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흑인들이 운동신경이 우월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엔타인(John Entine)의 연구에 따르면 유전자와 스포츠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단지 흑인들은 그들의 열악한 환경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를 스포츠로 삼고 노력했을 뿐이다. 이번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선전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다행히 프랑스 축구계는 우리보다는 더 공정한 시스템으로 선수들을 선발하다보니 흙수저들이 들어갈 구멍이 있었다.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선수들과 또 그들을 공정하게 선발하는 시스템, 감독과 선수들의 화합. 이 3박자가 하모니를 이루었기에 2018년 월드컵은 프랑스의 승리로 돌아간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 팀의 우승을 아프리카의 승리라고 누가 감히 야유할 수 있겠는가.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