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상고법원을 반대한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압박하기 위해 기획한 법원행정처의 방안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주도로 진행됐다.
31일 법원행정처가 추가로 공개한 '대한변협에 대한 대응 방안 검토'란 문건을 보면 "대한변협회장 개인을 대한변협 구성원과 지방변회로부터 고립시켜야 한다"는 전략이 세워졌다. 이 문건은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맡고 있던 2015년 4월17일 기획조정실 명의로 작성됐다.
해당 문건은 "대한변협회장은 법률가로서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돌출행동 중"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변호사의 사회적 지위를 저하시킬 것"이라고 적혔다. 또 하 전 협회장의 정치 성향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진보 성향 변호사들은 이미 반대한다는 것을 전제로 중도·보수 성향 변호사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전파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았다.
우선 하 전 협회장을 압박하기 위해 즉시 시행할 수 있도록 변협과의 간담회를 중단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는 1996년부터 2014년까지 총 26회에 걸쳐 간담회가 진행된 것에 이어 2015년에는 대법원이 개최를 제안하는 차례지만, 변협에 개최를 제안하지 않는 방안이다. 이에 대한 효과로 "대한변협 입장에서는 법조삼륜의 한 축이란 이미지를 부각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간담회 개최 중단으로 상당한 압박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예상되는 부작용도 적다"는 분석도 이뤄졌다.
특히 추가 검토가 필요한 방안으로 하 전 협회장 개인에 대한 공격도 필요하다고 언급됐다. 이에 대해 정계 진출 포기 선언을 간접적으로 압박하고, 협회장으로 쌓은 사회적 영향력, 명성, 인지도를 이용해 사건을 수임할 수 있으므로 변호사 개업 포기 선언도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 전 협회장이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재직 시 재정 파탄에 대한 해명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추가 검토 방안 중 하나인 변협 주관 변호사연수 법관 출강 중단에 대해서는 출강이 예상되는 재판연구관, 법관에게 출강을 자제해 달라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1안과 전국 법원장에게 소속 법관이 출강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안내해 줄 것을 요청하는 메일을 발송하는 2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변호사대회(8월 개최 예정) 불참 ▲변호사 평가제 시범 실시 계획 유포 ▲대한변협 법률구조 예산 지원 중단 ▲법무부 장관의 대한변협회장에 대한 감독권행사 촉구 등이 거론됐다.
이 문건에는 이러한 압박 수단을 활용할 때 장·단점과 부작용 등에 대한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들어 있다. 이에 대해 "사법부 위신에 손상을 주거나 역공의 우려가 있는 방안, 전체 변호사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방안, 국민이나 제3의 기관에 피해 또는 반발을 살 수 있는 방안은 부적절하다"고 표현됐다.
임 전 차장이 2015년 8월13일 직접 작성한 '대한변협회장 관련 대응 방안'이란 문건에는 하 전 협회장을 더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내용이 적혔다. 해당 문건에서는 당시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서 반려를 '월권·노이즈 마케팅 행태'라고 지칭하면서 "상고법원 추진에도 큰 걸림돌 중 하나"란 명확한 압박 검토 배경이 등장한다.
이에 대한 총론적 접근 방법으로 "프레임 자체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파행적 운영'이 아니라 '변협회장의 몽니'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 프레임이 계속될 경우에 대해 "'대법원의 기득권 유지' 이미지가 강조돼 불리하고, 특히 상고법원 추진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설명도 첨가됐다.
또 다른 총론적 접근으로 "특히 변협회장이 옹립하려 했던 대법관 후보가 정파적 편협성이 우려된 후보였음을 지적해 우군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방안도 나왔다. 이 방안에는 "김선수 변호사가 변협 추천 당시부터 '통진당 변호인단장' 경력으로 보수단체로부터 자진 사퇴 촉구를 받았다", "김선수 변호사 추천을 두고 '변협이 민변의 입김 아래 있다"는 지적·비판도 이뤄진 바 있다"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이 문건은 각론적 접근 방법으로 대법관후보추천위원장 등을 통한 대응을 1안으로, 언론기관 등을 통한 대응을 2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 전 협회장에 대한 무시·고립 전략도 세워졌다. 이에 대해 "변협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대응, 특히 앞으로 공식적·의례적 접촉 이외에 비공식적·실질적 접촉은 없을 것임을 고지한다"며 "변협을 고립시킴으로써 대립·갈등 관계 조장에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