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한변협 대변인과 수석대변인으로 근무하던 시절, 서초동에서 매일 밤 11시 정도에 심심찮게 높으신 법원행정처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법조인들이 잘 가는 분위기 좋고 안주 좋은 무슨 무슨 ‘바’에 가면 늘, 그분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사람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다.
그 분은 사람 좋은 웃음과 재미있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늘 좌중을 압도했다. 항상 겸손했고 자기를 낮추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계란 폭탄주’ 묘기를 한 번 보고 나면 설령 그 분을 별로 안 좋아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팬이 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한동안 회자되던 ‘폭탄주 이모님’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임 전 차장의 계란주는 참으로 신기했다. 술을 맥주 잔에 따라 놓은 다음, 소주잔에 약간의 소주를 담는다. 그리고 소주잔 두 개를 맞붙인 뒤 두 손을 이용해 계란을 집는 손 모양을 만들고 마치 정말 날 달걀을 깨듯 그 소주 잔을 머리에 한 두 번 탁탁 부딪친다. 계란 노른자와 흰자가 바닥에 떨어질까 조심스레 움직이는 것처럼 그 소주잔 뇌관을 이미 따라 둔 맥주 잔에 투하하면 계란주의 묘기가 완성된다.
높디 높으신 법원행정처 실세 엘리트분이 그런 묘기를 부리면서 늘 좌중을 압도하고 재밌게 해주는데 그 누가 그 분을 마다하겠는가, 게다가 임 전 차장은 잠도 안 잔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오로지 법원에 충성하는 사람이었고, 법리에 밝았으며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정도를 걷는 법조인의 표상이었다.
사법연수원에 근무할 때는 그가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모두 스스로 나서서 도 맡아 하는 바람에 ‘마타하리’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것을 솔선수범하여 맡아하고,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 그러면서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대법관 1순위. 나중에는 대법원장까지도 바라보는 그가 바로 임 전 차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법부 사찰 문건'의 공개를 통해서 필자가 그토록 감탄해 마지 않던 임 전 차장의 뒤에는 '양승태 사법부'의 오만과 교만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냄새나고 더러운 그 민낯에 속아 온 우리가 얼마나 큰 슬픔을 겪고 있는지, 그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사람 좋은 웃음을 띄며 모든 이들에게 친절했던 그들은 철두철미하게 이중적인 태도로 국민을 ‘상고법원’ 로비의 볼모로 삼았었고, 국민을 기만하여 왔었다. 이번에 드러난 문건 속의 내용은 실로 너무 구체적이고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너무나도 철두철미해서 도대체 이 문건을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다고는 지금도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법관은 오직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믿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할 말도 못하고 무언가 한참 모자란 중생인 것처럼 스스로를 폄하하면서 살아왔다. 무식하고 이기적인 국민을 위해서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님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고생하는지 다 알기에, 법원의 판결이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아도 ‘무식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매한 진리와 대단한 법리가 숨어있겠거니, 우리는 너무도 바보 같아서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만이 알고 있는 그 훌륭한 인격과 고뇌의 결과를 우리가 의심하거나 재해석하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단속해왔던 것이다.
법조 3륜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법원과 검찰, 그리고 변협 수뇌부들이 가끔 모여서 회의를 한다. 그렇게 고매하고 높은 자리에서 법조 3륜은 대한민국의 사법질서를 논하고 서로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서울 법대 남자 판사 출신' 법조인이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그 세계는 철저히 성골과 진골로 나뉘는 세계고, 철저히 상대방을 무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가 현직에 있던 2011년 당시에는 판사출신 변협 회장이 있었지만, 2013년에는 야간 고등학교 출신의 야간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의, 이른바 ‘듣보잡’ 지방변호사회 출신의 변호사가 변협 회장이 되었다. 아마도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보기에는 그런 '변협 나부랭이들'과 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모욕적이었을 것이고 그들이 주장하는 ‘대법관 50명 증원’이라는 명제가 어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검은 속이 이런 식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때 그렇게 겉과 속이 달랐던 사람은 ‘양승태 한 명' 뿐이었을까?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