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언론사의 기획기사를 2년만에 재탕한 점은 의문","인터넷 매체 등 마이너 언론이 온라인에서 인용한 것이 전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2015년 작성한 ‘민판연 관련 대응방안 검토’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문건에 등장하는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는 초기 서울대 법대 출신이거나 임용 성적이 좋은 법관들만 가입을 권유 받았던 연구모임이다. 지금의 김명수 대법원장이 활동했던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와는 대척점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0년부터 민판연은 서울대 법대 이외 출신 회원도 모집했지만 여전히 소수의 엘리트 판사들로만 구성돼 '사법부의 하나회'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고, 이와 관련된 보도도 잇따랐다. 2015년 한 통신사가 관련 내용을 보도했고, 이어 대한변호사협회의 ‘민판연의 사조직화가 우려된다’는 성명이 나오자 몇몇 매체가 후속 보도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보통 언론의 보도가 나가면 이후에 해명이나 개선 방안이 기대되지만 '양승태사법부'는 달랐다. 기사를 쓴 해당 언론매체를 ‘마이너 언론’이라고 지칭하며, ‘이들의 단발성 문제제기에 불과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냈다. ‘다수 메이저 언론을 제외한 마이너 언론만 보도했으니 확산 가능성이 낮다’는 적나라한 표현을 법원이 문건으로까지 남겼다. 이처럼 단세포적인 대응은 자못 충격적이다.
언론은 아무 이유 없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민판연 소속 판사들 중 일부는 법복을 벗은 뒤 김앤장 등 대형로펌에 대거 포진해 전관예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정단체에 소속된 법관들이 법원 내 주요요직을 독점하는 현상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언론보도가 끊이지 않는 것은 해당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최근 공개된 관련 문건을 몇번이고 다시 살펴봐도 당시 법원행정처의 태도는 ‘자성’보다는 향후 있을 비난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으로 읽힐 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자체적으로 '메이저 언론 매체'를 추려 기사 보도를 요청하자면서도 특정 지역언론을 거론하며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평가한 문건도 있다. 누구보다 언론 매체에 동등하게 처우해야 할 법원이 '메이저·마이너' 언론을 자신들 입맛에 맞게 분류하고 등급까지 매겼다.
그렇다고 메이저 언론매체에 대해 딱히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또 다른 문건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회의원을 초청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의원들을 초대하는 게) 격에 맞지 않지 않으나 이미 언론사 사회부장 등 그보다 훨씬 격이 낮은 인사를 초청한 바 있다’는 적나라한 표현도 있다.
이처럼 양승태사법부가 언론, 국회 등을 압박하고 로비한 정황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언론을 폄하하고 저울질해온 사법부가 공정한 심판을 계속해서 맡을 자격이 있는지 질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사법부가 겪어야 할 진통이자 몫이다.
최영지 사회부 기자(yj11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