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파트 있고 부자됐는데 우리는 제자리 걸음이에요."
서울 삼양동 '옥탑방 살이' 반환점을 돈 지난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강북구 각지에서 주민들과 만났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정은 강북구 번동 언덕길에 있는 빌라촌, 오현숲마을 거주민들과의 만남이었다.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을 토로했다. 이 마을 다세대주택들은 노태우 정부 때 수도권 주택을 늘리는 과정에서 바다 모래로 급히 지어졌다. 세월이 지나 모래에 함유된 염분이 빗물에 녹는 백화 현상이 일어나고, 옹벽은 물이 새고 부풀어오르는가 하면 바스러지기까지 한다. 언덕길은 폭 5m 내외 정도 되는데 마을버스와 자동차가 계속 지나다녀 주민들은 차에 받힐까 불안해하고, 매연 때문에 천식과 감기에 시달린다. 인구 약 6700명 중 청년과 어린아이는 1100명에 그칠 정도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거주민 대다수는 재개발·재건축을 원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1종 일반용도지역으로 용적률이 낮은데다 고도제한 걸려있어 사업성이 떨어진다. 재개발·재건축보다 규모가 작은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소규모 정비사업조차 쉽지 않다. 건물을 7층 정도로 높이기라도 하면,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도로 교통과 주차장 문제를 해결할 길이 난망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을 억제하는 정책이 나름 타당성은 있다고 본다. 다만 동네를 다 뒤엎지 않을거면, 생활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안이 있어야 한다. 이날 박 시장은 공유 차량 정책, 친환경 마을버스 정책 등을 제시했지만 더 근본적·실질적인 개선책이 필요해보인다.
결국 마을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거주민이므로, 주민이 스스로 마을 문제를 해결할 여건을 만들어줄 방안이 있어야 한다. 오현숲마을은 주민이 모여 도시재생을 알아가는 '희망지 사업' 대상지였지만, 정작 모일 공간이 없어 주민들은 어린이집 등을 전전했다.
이날 박 시장은 공동체 시설인, 이른바 '활력소'를 짓겠다고 했지만, 사회복지관도 지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활력소'뿐 아니라 크고 작은 공동체 시설도 가능한 한 많이 조성할 필요가 있다. 주민의 문제 해결 시스템과 서울시의 정책이 시너지를 이루면, 다른 재개발·재건축 불모지에도 적용될 모델이 될 것이다.
신태현 사회부 기자(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