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초기 문명을 관통한 종교는 기독교다. 그 전 그리스신도 로마신도 국교로 성장하진 못했다. 로마인도 게르만족 지도자도 통치를 위해 필요하다고 수용한 종교가 기독교다. 기독교로 인해 몇 세기에 걸쳐 십자군전쟁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지배층은 종교를 앞세워 영토확장과 경제적 욕망을 채웠다. 고대, 중세 유럽 역사가 대체로 그랬다. 전쟁에 대의명분을 준 것이 기독교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리에 모순되지만 기독교가 생존한 방식이었다. 왕국은 전쟁이 필요했고 교회는 국교로 인정받기 위해 정의로운 싸움에 동조해야 했다.
기독교 뿌리인 유대교는 그렇지 못했다. 유대교는 유대인만의 종교다. 무수한 신이 존재했던 고대 유럽에서 특이하게 유일신을 고집한 배타적 종교다. 그래서 박해받았다. 유대인은 신이 오직 하나며 자신들만 보살펴 준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 선택받은 민족이란 믿음이 스스로를 가둔 장벽이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도 유대인이었다. 초기 예수의 추종자들도 그랬다. 처음엔 기독교가 유대인만의 종교인지도 추종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 유대교를 고집한 쪽은 기독교인의 자격에 엄격했다. 구약성서의 규율을 지켜 유대인이 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기독교가 이런 전통을 고수했다면 오늘날 지구상 보편적 종교로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절대불변의 종교도 노선을 바꾸는데 정책이 바뀌는 데는 보다 관대한 시선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삼성을 방문했다. 탄핵정국 당시 촛불여론은 납득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이 부회장 대법원 판결을 남겨둔 상황이라 더욱 민감하다. 그래서 판결이 법리와 다르게 기운다면 그것은 사법부의 잘못이지만 청와대도 불필요한 의혹을 자초했다. 경제 지표가 나쁘다 보니 여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기독교에 빗대면 정부가 일부 비판을 무릅쓰고 보편적 일자리 약속을 얻어낸 셈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보유세, SOC예산 등에서도 노선을 살짝 바꿨다. 이를 두고 뭉뚱그려 변절이라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인지 지지율도 하락했다. 그것이 유대교와 기독교를 가른 최선의 판단이었는지는 아직 예단하기에 이르다. 지금은 개별 정책에 대한 평가가 먼저다.
SOC 확대엔 지지를 보낸다. 정부가 내수 일자리를 늘린다면서도 SOC를 줄이면 일단 지표상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 건설업종엔 많은 고령층이 종사하고 있다. 일감이 줄면 재취업이 어려운 고령층은 실직자가 된다. 일자리 지표는 물론 양극화 지수도 나빠질 수 있다. SOC 예산이 허투루 쓰인다면 제도를 정비하면 그만이다. 예산을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예산이 하도급에 제대로 전달되도록 방법을 강구하면 된다. 예산이 줄자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고자 불법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한다. 여기엔 처벌을 강화하고 공사비는 적정하게 책정해야 한다.
최근 사회적기업 육성 논의가 활발하다. ‘착한 기업’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지원해 일자리 효과도 꾀하는 식이다. 지금 생활환경 복지 위주 SOC 방침도 맥이 다르지 않다. 대기업 진입을 차단하고 기술 혁신과 일자리에 힘쓰는 착한기업들에 SOC 기회를 주면 된다. 기존 다리를 부수고 먼 길을 돌아가지 말자.
이재영 뉴스토마토 산업2부장(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