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여행자도 시민의식 있어야

입력 : 2018-08-21 오전 6:00:00
“안녕! 의심의 여지없이 파란 하늘의 어여쁜 8월이여! 열기로 가득 차 무겁고 짜증나는 달, 우리의 몸은 땀으로 축축하고, 갈증을 사라지게 하는 한줌의 바람도 없다. 이 뜨거운 공기를 견디면 곧 천둥이 닥쳐온다. 천둥은 기적처럼 지나간다. 온도계의 수은주는 허둥대 높이 올라가고, 태양은 내일 다시 떠오르리. 새로운 세계가 다시 시작되리. 이게 여름철이다…” 장 클로드 르메즐(Jean Claude Lemesle)의 ‘8월의 찬가’다.
 
열기 속 파란 하늘의 8월. 사람들은 이런 계절을 만끽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글로벌 시대, 세계를 이동하는 외국 여행객은 얼마나 될까. 프랑스 플라네토스코프(Planetoscope)에 따르면 지난 해 유럽과 아프리카를 방문한 여행객은 13억 명으로, 1초당 41명 이상이 이 대륙에 도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객이 가장 많은 나라는 프랑스가 약 8900만 명으로 1위였고 미국(7800만 명)과 스페인(7000만 명), 중국(5600만 명), 이태리(5000만 명) 등이 뒤를 이었다. 도시 기준으로는 파리가 3000만 명으로 1위를 기록했으며 그 다음은 베네치아(2000만 명), 런던(1500만 명), 로마(1200만 명) 순이었다.
 
이처럼 파리는 세계인이 꼽는 여행지이지만, 프랑스인이 꼽는 여행지는 따로 있다. 2016년 6월7일 <프랑스 2TV>서 스테판 베른의 진행으로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마을’이 방영되었다. 프랑스 내 13개의 도시가 경쟁을 벌인 끝에 브르타뉴 모르비앙(Morbihan)에 있는 로슈포르 앙 테르(Rochefort-en-Terre) 시가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주간지 소사이어티(Society)의 주목도 받은 로슈포르 앙 테르는 중세 영주들이 살던 다양한 멋진 성들과 고딕양식의 건물, 돌과 목조로 된 집들이 르네상스 시대를 연상시키는 한편 고전풍의 호텔과도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로슈포르 앙 테르는, 지난해 말 민영TV <TF1>에서 발레리 다미도(Valerie Damidot)가 진행한 ‘크리스마스의 굉장한 마을’ 프로그램에도 등장해 ‘2017년의 멋진 마을’로 선정됐다. 그 후 로슈포르 앙 테르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도시가 되었다. 전에 비해 6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역 내 소상공인들은 급격한 매출 증가로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2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도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이 전부가 아니다. 마을 내 공공시설은 수많은 방문객 수요를 따라갈 수 없었다. 게다가 일부 관광객들이 아무데서나 실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일부 상공인들이 멋대로 가게 테라스를 늘려 손님을 받고 있어 이 또한 시의회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결국 로슈포르 앙 테르 시의회는 언론에 출연한 시장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의원들은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마을’ 프로그램 출연은 장 프랑수아 위모(Jean-Francois Humeau)시장이 혼자 결정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스테판 콩보(Stephane Combeau) 부시장은 “콩쿠르가 괴상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우승을 했을 때 시장은 마치 월드컵을 쟁취한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현실 감각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위모 시장은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마을’ 출연 후 나는 신경쇠약에 걸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관광객의 급증은 한 도시를 갈등에 몰아넣기도 한다. 관광산업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환경과 생태계 파괴에 큰 손실을 가져오는 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최근 유럽에서는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 비영리단체, 환경론자들이 환경·생태계 보호 캠페인을 벌여 시민의식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이 관광객이 되는 순간 환경에 대해 책임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는 자국에서 보다 외국에서 더 심하다. 법적 규제의 부재나 타지 사람들의 습관이 이런 행동을 유발하는 듯하다.
 
그러나 지구환경 보전은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공통된 의무다. 관광객은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자기 나라에서처럼 관광지에서도 환경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책임 있는 시민은 세계 어디서 피서를 즐기든지 간에 책임 있는 여행객이 되어야 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2649만 명의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떠났고 올해는 3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성장으로 전체 한국인의 3분의 2 가량이 해외에 나가 세계의 여행지를 돌며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다만, 세계의 아름다운 여행지들이 그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해 후손들도 즐길 수 있게 하는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 로슈포르 앙 테르의 일부 몰지각한 여행객들처럼 여행지에 갈등을 제공하는 한국인들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지에서도 자기 집에서처럼 질서를 지키고 청결을 유지하는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8월의 열기가 아직 한 주 남은 지금 어디론가 떠나려는 한국의 여행객들이 유념해야 할 점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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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