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방지제도 무용지물)①정부 기술탈취 근절대책 실효성 높여야

불공정행위 입증, 전체 상담 중 0.2% 불과…공정위 처벌도 미온적

입력 : 2018-09-27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최원석 기자] 정부가 중소기업의 대기업 기술탈취(유용)를 근절하겠다고 호언했지만 각종 관련 제도가 대부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종속구조와 '기울어진 운동장'의 불공정한 시장 환경 바로잡기 등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없이는 어떤 제도도 결국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산하기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따르면 중소기업 기술유출·탈취 상담 의뢰 건수는 2016년 4672건, 2017년 5929건, 2018년 8월 말 4365건에 달했다. 올해에는 상담 건수가 6000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중 기술유출·탈취가 인정된 건수는 2016년 9건, 2017년 8건, 2018년 12건 등으로 총 30건이다. 30건 중에서 경찰 수사 진행이 9건, 검찰 송치가 6건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기술유출·탈취가 의심된다며 정부 기관에 상담을 요청한 1만5000여건 중에서 실제 기술탈취가 인정된 건수는 0.2%에 불과한 셈이다.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입증과 적발이 어려울 뿐더러 장기간 막대한 소송 비용으로 인해 법적 분쟁을 포기하는 중소기업이 많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농업 간에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동반성장 문화 확산을 위해 2004년 설립된 기관이다. 중기부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상담은 재단으로 일원화돼 있으며, 재단은 중소기업에 분쟁 조정 및 법리적 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중소기업은 재단의 서비스 지원을 통해 기술탈취 행위가 의심되면 검찰과 경찰 등에 수사 의뢰를 지원하는 구조다. 
 
이와 별개로 기술탈취를 당한 중소기업의 신속한 피해구제와 법적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중기부가 2015년 도입한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 제도도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이 기술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 조정을 신청한 건수는 2017년 말 누적 58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분쟁 조정이 성립된 건수는 11건에 그쳤다. 
 
'경제 경찰'이라고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도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위 처벌에 미온적이긴 마찬가지다. 공정위는 2010년 중소업체의 기술자료를 탈취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2017년 말 누적기준으로 볼 때 공정위에 접수된 기술탈취 신고건수는 26건이다. 이중 처벌된 기업은 2015년 LG화학 1개사에 불과하다. 공정위가 지난해 9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근절하겠다며 '기술유용 근절 대책'을 발표한 이후 직권조사에 나서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한 두산인프라코어를 적발한 사례까지 포함해도 총 2건인 셈이다.
 
중소기업계에선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자료를 요구받거나 기술탈취를 당해도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전속적 거래 관계에 따른 계약 파기가 두려워 신고를 기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술탈취를 신고한 중소기업과 거래를 하지 않으려는 대기업 간 담합 보복도 적극적인 대응을 막고 있는 요인이다. 이런 이유로 기술탈취를 당하고도 법적 분쟁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이다. 핵심기술을 뺏기고 심하면 폐업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기술탈취가 만연한 환경은 중소기업 기술개발 동기를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정부의 기술탈취 방지 제도들에 대해 현장에선 실효성이 없다며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중기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되고 역할이 확대됐으나 중기부가 중소기업의 기술탈취와 기술유용 피해를 얼마나 해결했고, 예방했는지 의문"이라며 "중소기업 피해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조사와 예방 활동을 강화하고 피해가 확인될 경우 피해 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있는 제도를 보완해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김문겸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을 상대로 도면 등 품질자료를 요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일정한 조건 하에 서로 합의해 핵심 기술자료를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임치제도를 좀더 정교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개방형 혁신을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여승동 현대차 사장 등 13개 대기업 대표를 만나 기술탈취 근절 대책을 소개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사진=뉴시스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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