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삼성전자가 향후 5년간 500개의 스타트업 육성 과제를 지원한다. 삼성전자 내부에 국한됐던 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외부로도 확대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기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관리의 삼성'에서 '창의의 삼성'으로 발돋움하겠다는 방침이다.
17일 삼성전자-서울대 공동연구소에서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장(상무)가 C랩 성과와 향후 운영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17일 서울대학교 캠퍼스에 소재한 '삼성전자-서울대 공동연구소'에서 C랩의 지난 6년 동안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하찮은 아이디어란 없다"는 취지로 지난 2012년 시작된 C랩은 이날까지 2136일동안 917명이 228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산하고 도전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던 제도가 점진적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내며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장(상무)은 "C랩 이전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었지만 시행 1~2년 사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현업 부서장의 협조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웠다"고 출발 당시를 되새겼다.
C랩은 독특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현업에서 1년간 배제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 과제 수행 기간이 끝나면 심사를 통해 추가 연구가 필요한 곳과 스타트업으로 독립하는 '스핀오프' 대상 등을 가린다. 더 이상의 과제 수행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된 팀은 현업으로 복귀한다. 지금까지 180개 과제의 연구가 완료됐다. 이 중 78개는 사내 업무에 활용됐으며 34개는 스타트업으로 창업했다. 이달 말에도 2개 과제가 새롭게 독립하고 연내 3~4개 스핀오프 기업을 더 발굴할 계획이다. 이 센터장은 "1년간의 과제를 마치고 현업에 복귀하더라도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C랩 활동으로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하는 등 무형의 수확이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울대 공동연구소에 위치한 C랩 라운지에서 C랩 과제원들이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내부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C랩은 삼성전자에 대한 임직원의 인식도 변화시켰다. C랩 시행 초기 임직원을 대상으로 '삼성전자가 창의적인 회사인가',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절반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같은 질문에 80%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남다른 도전정신을 가진 새로운 인재상도 확인됐다. 이 센터장은 "이전까지는 업무 능력이 출중한 고성과자만 우대했다"며 "C랩 운용 후 현업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서 엄청난 몰입감을 보이는 사례가 종종 목격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창의 인력이 장기적으로 회사의 미래를 바꾸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부에서 쌓은 창의 역량을 사회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2022년까지 5년간 지원할 500개 과제 중 300개가 사외 스타트업인 'C랩 아웃사이드'다. 세부적으로는 대구·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200개, 삼성전자 자체 육성 100개다. 삼성전자와 사업 협력이 가능한 2~3년차 스타트업, 아이디어만 있는 예비 창업자, 1년 미만의 신생 스타트업이 모두 지원 대상이다. 지원 대상도 기존 모바일 분야에서 전체 IT 기술 분야로 넓혔다. 이날 삼성전자는 올해 지원할 사외 스타트업 15개를 선발했다. 인공지능(AI), 헬스, 가상현실(VR), 핀테크, 로봇, 카메라 등 여러 분야를 망라했으며 대학생 창업팀도 2곳 포함됐다. 이들은 다음달부터 서울 우면동의 삼성전자 서울R&D캠퍼스에 1년간 무상 입주해 과제를 수행한다. 개발지원금 최대 1억원과 실질 창업을 위한 전문가 멘토링, 해외 IT 전시회 참가 기회도 얻을 수 있다.
C랩을 통한 삼성전자의 최종 목표는 국내 창업 생태계 활성화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만 나타나던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기업),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 기업)이 국내에서도 나타나길 바란다는 것. 이 센터장은 "삼성전자가 육성한 기업을 시장과 동등한 가격을 지불하고 스핀인하는 날이 꼭 오길 바란다"며 "국내 창업의 디딤돌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