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휘 정경부 기자
1987년 10월29일, 제6공화국 헌법이 공포됐다. 전두환 군부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일어선 시민들의 6월항쟁이 거둔 쾌거였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 도입, 국정감사·헌법재판소 부활, 군의 정치중립 의무화,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등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3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강산이 3번 바뀌었고 우리 사회도 많이 변했다. 그렇지만 나라의 국본인 헌법은 사회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31년 전에 옳았다고 지금도 옳은 것일까. 미국식 대통령제와 영국식 의원내각제의 혼합으로 여야는 서로 발목을 잡고 있고,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은 곳곳에서 충돌한다. 북한을 향한 헌법의 이중적 태도는 고질적인 사회 이념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국민기본권 보호도 지금 기준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한때 우리 사회의 든든했던 갑옷이 이제는 도약을 방해하는 무거운 구속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개헌논의는 끊이지 않았다. 여야 할 것 없이 개헌의 당위에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여야 대결구도를 조장하는 현행 헌법이 개헌 그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또 일부 ‘정치꾼’들은 당리당략, 정치적 타산을 앞세우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개헌논의 무산을 방조했다.
개헌은 결국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해야 한다. 특히 현행헌법으로 기득권을 향유해온 거대 양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한국당과 민생경제 핑계를 대지말고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한다. 그간 번번이 개헌불발의 단초를 제공해온 한국당 역시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야3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개헌논의를 이끌어야 한다. 진정한 보수재건도 제대로 된 개헌논의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제 개헌의 골든타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개헌의 마지막 기회다. 내년 후반기부터 각 당은 사실상 2020년 총선체제로 전환한다. 총선이 끝나면 바로 2022년 벚꽃대선이 기다린다. 무한 정쟁의 블랙홀 속에 개헌은 잊혀질 게 뻔하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 아닌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보는 정치인들의 분발과 각성이 절실하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안 되면 판을 엎겠단 자세는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