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은 좌초되었다. 최종적으로 국회의 반대, 구체적으로 야당의 반대로 실패했다. 그렇다면 개헌은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인가? 일부에서는 개헌은 2020년 총선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한다. 국회의 반대로 개헌이 되지 않았으니 국회가 새로 구성되어야 다시 개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헌을 하려면 개헌을 시작할 동력, 즉 강력한 계기가 있어야 한다. 개헌의 동력은 현재의 정치지형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정계개편이 되어야 개헌을 이야기할 수 있다. 정계개편은 2020년 총선이 되어야 이루어진다. 개헌은 2020년 총선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가 정치공학적인 결론이다.
다른 개혁과제도 비슷하다고 한다. 개혁과제의 대부분은 법률의 제정과 개정이 수반된다. 정치지형이 지금과 같아서는 법률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 개혁법안도 모두 202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기까지가 논리적인 결론이다. 그런데 이 결론은 좀 이상하다. 너무 무력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한번 바꾸어 보자. 개헌을 통하여 달성하려던 꿈은 최종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는가? 개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개헌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목적이 중요하다면 개헌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헌법 개정은 다른 현안, 다른 개혁과제와 무관할 리 없다. 헌법은 한국 사회의 현안과 개혁과제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헌법 개정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7년 헌법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87년 헌법은 2018년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이끌기에는 부족하다. 대한민국의 방향, 국가권력기관의 견제, 정치권력의 구성, 인권 보장 등 국가 구성의 필수 요소들에 대해 불충분하다. 애초에 불충분한 점도 있었고 세월이 흘러 불충분하게 된 점도 있다. 2018년의 헌법 개정은 국가의 방향, 국가권력기관 견제, 정치권력의 구성, 인권 보장, 국가의 기본질서 등을 새롭게 결정하는 것이었다. 헌법 개정은 그 자체로 완결된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개혁의 중간목표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인권 문제만 보아도 헌법이 중간목표이자 출발점임을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생명권, 안전권, 자기정보통제권을 신설했고 평등권을 대폭 강화했다. 국가에 적극적 차별해소 정책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도 부과했다. 국민의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도 신설했다. 모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바람직한 개정 내용이다. 야당도 인권의 확대에 대해서는 특별히 반대하지 않았다. 야당도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자. 헌법에 생명권, 안전권, 자기정보통제권을 신설하고 평등권을 대폭 강화하는 조항을 넣는다고 갑자기 우리나라가 인권선진국이 될 리는 없다. 우리의 인권은 개헌을 거치면서 강화되겠지만 갑자기 완벽해지지는 않는다.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개헌은 중간 도착점이자 출발점이다.
개헌이 무산된 지금 개헌으로 달성하고자 했던 꿈은 법률과 정책으로 이루어야 한다. 개헌의 내용을 법률과 정책으로 실현할 때 사회는 변하고 개헌의 기초도 마련된다. 대통령 개헌 시도의 진정성도 인정된다.
개헌에서 제안한 정도로 인권을 법률과 정책으로 보장하면 실제 개헌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개헌을 통하여 만들어야 하는 인권존중 사회는 법률과 정책으로도 대부분 만들 수 있다. 법률과 정책으로 인권이 발전하면 개헌을 해야 하는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지고 개헌의 내용도 더욱 명확해진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개헌과 개혁이 함께 진행되면 최상이다. 개혁의 과제와 내용, 성과가 헌법으로 모아지면 개혁은 더욱 힘을 얻는다. 헌법의 지원을 받는 개혁은 더 철저한 개혁으로 나아가고 철저한 개혁은 사회를 변화시키며 헌법을 개정하게 만든다. 헌법도 시대의 변화에 알맞은 내용으로 변화한다. 이것이 개헌과 개혁의 선순환과정이다.
대통령의 개헌안은 개헌과 개혁의 선순환 중 개헌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에 의해 좌초된 지금은 개혁에 중점을 둘 때이다. 개혁에 중점을 두어 개헌의 내용을 법률과 정책으로 구체화해야 할 때이다. 개헌과 개혁이 선순환 구조를 가질 때 대통령 개헌안은 여전히 중요한 개헌안으로 남을 것이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