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수원지법 성남지원 앞에서 삭발을 했다는 소식을 접한 건 기자가 ‘오진으로 어린이를 사망케 한 의사 3명이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는 기사를 쓴 다음날이었다. 이들은 법워이 의사 3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한 판결에 항의했는데 기자의 기사를 보고 뒤늦게야 의사들의 법정구속 사실을 접한 듯하다. 법원과 구치소, 청와대 앞에서 연 일련의 기자회견들이 선고가 난지 4주가 훌쩍 지난 시점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 29일 의협은 성명서를 통해 ‘오진한 의료진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것은 부당하다’며 판결을 비판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의료상 과실을 인정한 재판부는 이곳 형사 재판부만이 아니었다. 사망 어린이 부모는 의사들을 고소하기 전인 2013년 이미 병원재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병원의 과실이 인정됐다. 민사 재판부는 “흉부 엑스레이 촬영 이후 추가 검사를 실시해 횡격막 탈장 및 혈흉을 조기에 발견했더라면 아동이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횡격막 탈장 조기 진단이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40%로 제한했다. 법조계는 물론, 의사들을 재판한 형사 재판부도 책임 비율에 의문을 표했지만 양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다. 사실이 이렇다면, 의료인들로서는 또는 그들의 단체인 의협으로서는 과실과 책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유족를 위로했어야 한다. 그러나 의협이 구속된 의사들을 석방하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사망 어린이에 대한 애도는 이미 묻힌 지 오래다.
의협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판결에 불복한다며 전국 의사 총파업이라는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환자들 생명을 담보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 판결에 불복할 적격이 있는 자들은 피고인인 해당 의사들이다. 이들은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의사들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의협이 아닌, 법원이 해야 할 일이다.
의협의 행동은 앞으로 가늠이 어려울 것 같다. 이제는 수술실 CCTV 설치 시범 운영까지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수술실 CCTV 설치가 필요하게 만든 장본인 역시 대리수술 등을 자행하던 의사들이었다.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구호뿐인 것일까.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쓴 기사가 엉뚱하게 특정집단의 사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쓰인 것 같아 심히 유감스럽다.
최영지 사회부 기자(yj11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