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30일 5년여만에 재상고심이 선고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의 핵심 쟁점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당시 협정문 전문은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라고 정했다. 제2조 1에서는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정했다. 제2조 3에서는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고 돼 있다.
이는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는지, 포함된다면 위자료청구권 자체가 소멸하는지, 외교적 보호권만 소멸하는 것인지로 세분돼 다퉈졌다. 대법관들 간 의견도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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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의견을 낸 대법관 7명은 “청구권협정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에 근거해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협정을 위한 회담에서 제시된 ‘8개항목’ 중 5항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는 문구가 있지만, 이 또한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판시했다. 즉, 일본의 침략적 전쟁을 위해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킨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소영·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므로 피해자들은 신일철구금을 상대로 국내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별개의견을 냈다.
반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라며 파기환송 취지로 반대의견을 냈다.
결국 한일청구권협정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는 2015년 7월, 같은 사건에 대한 대법원 첫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결론을 내기 위해 재판이 5년이나 지연되면서 피해자가 3명이나 사망했다.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당시 박근혜 정부와 일본간의 정치적 관계를 고려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 핵심에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현재 구속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선고 후 “청와대와 외교부에서 재판 진행을 끌어주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고 요구했고,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를 받아들여 이뤄진 사안”이라면서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범죄사실 27페이지에 강제징용 재판개입 혐의가 상세히 적혀있다”고 말했다.
판결이 확정되면서 피해자 또는 유족들이 실제로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겼다. 금원지급부분은 가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일주철이 대한민국 내에서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확보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고 쉽다. 다만, 국내에 재산이 손해배상금액을 충족할 만큼 있어야 한다.
이론상 우리 대법원의 확정판결문을 가지고 일본 법원의 집행허가 결정을 받아 신일주철에 대한 일본 내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에 나서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인의 대일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일주철이 인도적 차원에서 배상하는 방안도 없지 않지만 이 역시 현실성이 없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등 시민단체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폭적인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그러나 "너무 늦은 판결"이라며 "원고 4명 가운데 3명이 이미 돌아가셨고 후속 재판 원고도 모두 고령의 피해자들이다. 피해자에게 더 이상 남겨진 시간은 없다. 신일철주금은 판결에 따라 즉각 피해자에게 보상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