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1. 올해 1학기에 한 초등학교는 2학년 시험문제를 다음과 같이 출제했다. ‘저녁준비, 장보기, 빨래하기, 청소하기 등의 일은 주로 누가하는 일인가요?’ 정답은 ‘엄마’였다.
#2. 여고나 여중의 교훈에는 ‘참는다’, ‘희생한다’, ‘착한 딸’, ‘아름다운 여성’ 등의 단어가 등장하며, 남중과 남고에는 ‘개척’, ‘하면 된다’, ‘창조적인 사고’, ‘힘차게 앞서자’ 등이 등장한다. 한 남고 급훈은 ‘여자는 얼굴이 권력이고, 남자는 성적이 권력이다’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내달 3일 ‘학생의 날’을 앞두고 학교에서 겪는 성차별 언어와 행동을 바꿔보는 ‘서울시 성평등 생활사전 학교편’ 결과를 발표했다. 시민 528명이 재단 홈페이지에 의견 738건을 접수했다. 재단은 이를 토대로 국어·여성계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 영향력이 높은 학교 내 개선해야 할 성차별적 말과 행동 5건을 선정했다.
재단은 ▲성별이 아닌 개인 특성 반영한 수식어 사용 ▲고정된 편견 강요 금지 ▲‘공부 못해도~’ 사용 자제 ▲교복·출석번호 등 학생 선택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교훈·급훈 교체 등을 제안했다.
‘학교생활 중 성차별적인 말을 듣거나 행동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참가자 중 86.7%가 성차별 언어나 행동 경험이 있었고, 여성의 경우 87.8%가, 남성의 경우 82.5%가 ‘있다’고 답했다. 가장 성차별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교사의 말과 행동’이 34.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교칙’, ‘학생의 말과 행동’, ‘교과 내용’, ‘진로지도’ 등이 뒤를 이었다.
우선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된 수식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 ‘듬직한’, ‘멋진’, ‘대범한’ 남학생과 ‘조신한’, ‘예쁜’, ‘얌전한’ 여학생 등으로 표현되는 수식어를 개인의 특성을 반영해 사용하자는 제안이었다.
급식양을 성별에 따라 다르게 주거나 여학생에겐 교사나 간호사 등을 진로지도하거나 남학생에게 이과 진학을 당연시하는 경우가 조사됐다. 남학생이 운동을 못하면 핀잔을 주고 여학생이 운동을 잘하면 선머슴 같다고 놀리기도 한다.
여성에게는 ‘공부를 못해도 결혼만 잘 하면 된다’거나 남성에게는 ‘지금 공부하면 와이프 외모가 바뀐다’는 등의 성적과 배우자의 외모를 연결하는 말도 여전하다. 교복, 출석번호, 남녀짝꿍 등 학교생활에서 정해진 규정이나 규칙에 대해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자는 요구도 높았다.
여학생도 교복 바지와 치마 중 선택 가능하거나, 남학생도 반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출석번호와 남녀짝꿍번호도 고정관념을 깨고 자율적으로 앉게 정하자는 목소리다.
개척, 자립, 자주, 창조 등 능동적인 목표를 제시한 남자 중·고등학교와 달리 여자 중·고등학교는 희생, 알뜰, 인내, 부덕 등 가부장제 중심 사회에서 요구되는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도 여고는 ‘아름다워라’, 남고는 ‘높은 이상을 갖자’를 교훈으로 다르게 두고 있다.
이밖에도 학교에 ‘엄마를 모시고 오라’ 대신 ‘보호자를 소환해 달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가족형태가 다양해지는 만큼 엄마 이외에도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성차별·혐오 표현부터 성적 농담, 스킨십 등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올해 1학기에 한 초등학교에 출제된 2학년 시험문제. 사진/서울시여성가족재단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