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부 전수조사 필요하다"

13년간 진행된 소송 승소 개가…"일본 사과·배상받는 실질적 절차 이어져야"
"정부, 진상규명부터 분명히…역사 교과서 등 통해 기억해야"

입력 : 2018-11-09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11대 2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005년 한국 법원에 처음 소송이 제기된 지 13여년 만이다. 재판이 지연되는 바람에 원고 4명 중 유일 생존자가 된 98세의 이춘식씨는 "너무 기쁘고, 슬프다"고 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 판결에 대해 지난 6일 "폭거이자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공격했다. 정의의 지연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받는다. 그들을 수년동안 가까이서 본 변호사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이번 사건 소송대리인 김세은 변호사를 만났다.
 
사진/ 홍연 기자
 
13년 만에 나온 강제징용 피해배상 판결, 어떤 의미가 있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다는 사실을 대법원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설시해줬다는데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뿐 아니라 이것이 향후 재판들에 대해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본다.  
 
강제징용 소송의 변론을 어떻게 맡게 됐나 
원래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인 장원익 변호사가 시작한 소송으로, 김미경·장영석 변호사가 함께 오랫동안 진행해왔다. 2005년 시작한 소송이 13년 넘게 진행됐고, 이분들이 공직으로 가게 되면서 후배 변호사인 임재성 변호사와 이 소송을 맡아서 진행하게 됐다.  
 
'한·일청구권협정' 해석을 두고 대법관들 의견이 갈렸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7명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기택 김소영·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다수 의견과 근거는 달랐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결론에는 동의했다. 반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한일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손해배상 청구권도 포함돼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학계에서도 분분한 의견이 있었는데, 쉬운 쟁점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이 갈라진 것에 대해 이해하지만 다수의견이 타당하다고 본다. 청구권 협정문이나 부속 문서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없고, 불법행위가 전제되지 않았음에도 이를 본거로 하는 청구권 소멸 주장은 도의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판결 선고 당시 피해자들 표정은 어땠나.
당사자와 유족뿐만 아니라 후속 소송으로 제기된 다른 피해자도 본인들의 재판이 관련돼 있어 이 소송결과를 계속 기다렸다. 다들 빨리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고 입장 표명을 해왔다. 4분 중에 결국 혼자 남았던 이춘식 할아버지는 선고 당일 계속 울면서 기쁘고 좋은데 혼자 남아 마음이 아프다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사실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는데, 좀 더 빨리 판결이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개입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사법농단 사태가 불거져 이 소송이 전원합의체로 넘어가 빨리 판결이 난 것에 대해선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원하는 대로 나왔지만, 그동안에 있었던 절차상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하고 문제들이 공개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다른 피해자들 소송도 이어질까. 
일본과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여 추가 소송이 진행돼야 한다. 일본정부가 대법원판결이 나온 뒤에도 청구권협정으로 손해배상권이 소멸된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일본 기업들에도 배상이나 화해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소멸시효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소멸시효 기산점을 최종 선고 확정일인 올해 10월 30일로 보면 2021년에 시효가 종료된다. 이 시기 전까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절차로 나아가야 한다.
3년이라는 기간 안에 소송을 제기하려면, 우선 정부에서 전수조사를 시행해 생존 여부, 피해사실 및 피해자를 확정하고 권리 행사 절차를 안내해야 한다. 대한변협이나 민변처럼 공익활동을 할 수 있는 소송 대리인단을 꾸려 공익사건으로 처리가 되는 게 좋을 것 같다. 변호사는 공익활동을 하고, 변론기금을 만들어 수송 수행 비행을 마련해 사용하는 방법으로 사회적인 차원에서 권리 구제가 이뤄질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판결 효력을 일본이 부정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 입장이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일본 법원에서 우리나라의 판결 효력을 부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 판결을 가지고 일본에 가서 강제집행을 하거나 일본 법원에 우리나라의 판결 효력을 승인해달라고 하는 단계까진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 소송은 이춘식 할아버지를 포함한 4명만의 소송이 아니라 신일철주금 징용 피해자를 비롯해 다른 기업 징용 피해자 등 대상이 되는 모두의 소송일 수도 있다. 협의를 통해 사실관계와 절차에 대한 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차원에서 필요한 대응은 무엇인가.
유엔(UN) 총회가 2005년에 채택한 인권피해자권리장전에는 ▲진실에 대한 권리 ▲재판에 대한 권리 ▲배상에 대한 권리 등이 있다. 이 기준에 따라 우리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 조사를 실시해 사실관계를 규명해야 한다. 이는 진실에 대한 권리기도 한 동시에 재판과 배상에 대한 권리의 기초가 되는 작업이다. 권리구제의 절차가 있는 것을 안내하고, 구제 뒤에는 명예회복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책도 내고 명단도 만들어 역사교과서에 싣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기억해야 한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청구권 협정에 대한 해석 문제를 두고 일본이 제소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소송절차가 진행될 수 없다. 청구권 협정 3조에는 협정 해석에 관해 분쟁이 있을 때 양국은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이게 어려우면 중재 절차를 거치도록 했는데 마찬가지로 강제하는 조항이 없다.   
 
이번 재판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말해달라.
13년 동안 재판 진행됐는데 거기에서 마지막 부분의 조금을 제가 진행했다. 원했던 결과에 다다라서 기쁘고 남아있는 일들이 더 많다. 실제로 사과를 받고 피해자들이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 중요한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기업이 1억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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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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