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총수로서의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이미지가 실적 악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구광모 LG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형성했던 '3·4세 경영인 트로이카'에서도 배제됐다. 실적 회복, 지배구조 개선, 미래 먹거리 발굴 등 그가 처한 어려운 현실이 지지도에 그대로 반영됐다.
3일 발표된 '12월 대한민국 재벌 신뢰지수' 결과 '향후 기업을 가장 잘 이끌 것 같은 3·4세' 항목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10.39%의 지지를 얻어 전달에 이어 4위에 머물렀다. 지난 8월 15.73%로 정점을 찍은 뒤 9월 15.20%, 10월 13.42%, 11월 11.66%로 꾸준한 하락세다. 지난달에는 처음으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3위 자리를 내줬다. 정 부회장과의 격차는 2.1포인트에서 2.5포인트로 소폭 확대됐다.
무엇보다 현대차의 실적 악화와 겹쳐 뼈아프다. 현대차는 지난 3분기 288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76% 급감, 시장에 충격을 줬다. 특히 자동차부문은 40억원의 영업이익으로 간신히 적자를 면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다. 같은 기간 기아차의 영업이익은 117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 4270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지만, 시장 전망치의 3분의 1에 불과한 초라한 성적이었다. 영업이익률은 0.8%로 100원을 팔아 1원도 벌지 못하는 수준을 보였다.
어닝쇼크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2월만 해도 16만원을 상회했던 현대차 주가는 10만7000원(30일 종가 기준)까지 하락했다. 지난달 20일에는 9년 만에 처음으로 10만원 선이 무너졌고 22일에는 52주 신저가(9만2500원)를 기록했다. 시가총액은 22조86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시총 순위도 올 초 4위에서 6위까지 밀려났다.
헤쳐나가야 할 앞날은 더욱 험난하다. 가장 시급한 실적 회복은 답이 보이질 않는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외국산 자동차에 25%에 이르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대외적 환경이 녹록치 않다. 일부 인적쇄신을 단행, 조직에 위기감을 불어넣고 있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답답해진 그는 현장 최일선으로 나왔다.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LA오토쇼에서 현대차의 야심작 '팰리세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9월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을 만나 수입차 고관세에 대한 어려움을 피력한 지 두 달 여 만의 미국행이다. 지난달 초에는 올 들어 5번째로 중국을 찾았다. 사드 여파에서 도무지 헤어 나오질 못하면서 그의 중국행도 잦아졌다.
정 수석부회장은 그룹의 활로를 '오픈 이노베이션'에 두고 메쉬코리아, 임모터, 그랩 등 국내외 미래 기술 보유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같은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친정체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부친인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그룹 장악력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다만, 김용환 부회장을 비롯해 최고경영진 대부분이 정 회장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인적쇄신에 대한 부담도 큰 것으로 전해졌다.
지배구조 개선도 차일피일 미룰 수 없다. 지난 5월 현대모비스의 AS 및 모듈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해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했으나,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의 반대로 좌초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한 만큼 그룹 차원에서 조속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현대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룹들은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했다.
한편 이달에도 구광모 회장이 '향후 기업을 가장 잘 이끌 것 같은 3·4세' 항목에서 24.68%의 지지를 얻어 1위에 올랐다. 이재용 부회장은 17.36%로 2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의 격차는 전달 5.75%포인트에서 이달 7.32%포인트로 확대됐다. 정용진 부회장은 12.89%로 3위에 오르며 '신 트로이카'를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