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내년부터 적용되는 체외진단기기 규제완화를 앞두고 의료계와 정부·산업계의 의견차가 뚜렷하다. 과도한 규제를 없애고 유망 산업 활성화를 꾀하려는 정부 및 산업계와 각종 부작용 및 건보재정 부담 등을 우려하는 의료계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소하(정의당) 의원은 서울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체외진단검사 의료기기, 신의료기술평가 면제 문제없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의료계와 산업계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소속 관계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정부는 지난 7월 혁신 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며 체외진단검사 의료기기의 신의료기술평가 단계를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장 선진입 이후 사후 평가를 통한 검증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당장 내년부터 안전성이 검증된 감염병 분야 체외진단기기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가 유예된다. 기존 체외진단 의료기기는 식약처 판매 허가를 획득해도, 해당 기기 적용 기술이 신규 의료 기술로 분류되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아야 출시가 가능했다. 지난 2007년 국내에 도입된 신의료기술평가는 적용·판매를 위한 의료기술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평가하는 제도다.
의약품이나 일반 의료기기처럼 직접 환자에게 접촉하는 게 아닌 검체를 통한 진단에 활용되는 체외진단 의료기기의 경우 과거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 2009년 대유행한 신종플루의 확진여부를 알 수 있는 시약을 기점으로 전환기를 맞았다. 체외진단 의료기기에는 검체를 체외에서 검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시약과 대조·보정물질, 기구 및 장치, 소프트웨어 등이 포함된다.
특히 최근 전 세계적 치료 기조가 치료가 아닌 예방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진단에 필수적인 체외진단기기 산업도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5년 559억달러(약 63조원)였던 세계 체외진단시장 규모는 내년 717억달러(약 81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체외진단기기 관련 규제완화 역시 이 같은 유망 성장산업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배경에서 이뤄졌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체외진단기기업체 수젠텍의 이정은 부사장은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활용되는 문헌고찰 방식은 논문 출간 인프라 확보가 어려운 국내 업체에게 불리한 방식"이라며 "수출 시 자국 판매 이력을 달라고 하는 경우들도 많아 업계 입장에선 분명히 도움이 되는 규제완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적잖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체외진단기기의 시장진입이 환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약물 및 처치를 야기할 수 있고, 불필요한 의료조치들이 취해지면 건보재정이나 환자 부담이 늘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식약처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의 안전성 자체가 완전히 다른 영역인 상황에서 이중규제라는 표현은 맞지 않으며,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투입한 후에 평가한다는 것은 의료기관을 임상시험 기관으로 이용하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의료민영화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되며, 새로운 의료기술을 도입하는 평가를 사실상 면제하고 도입하는 것은 정당성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류현미 제일병원 교수는 "산업계의 주장도 일리는 있는 만큼 신의료기술평가 기간을 단축시키거나, 탈락 이유를 명확히 하는 방법 등은 있을 수 있지만 식약처 의료기기 검증만으로 의료행위에 사용되는 것은 오진과 과잉의료, 오남용, 의료비 증가 등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대립한 양 측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의료기기에 중요한 것은 안정성인 만큼 산업 육성을 위한 평가 유예를 시행하는 동시에 철저한 검증과 사후평가를 통해 효율적인 규제완화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신준수 식약처 의료기기정책과 과장은 "식약처 허가과정에서 당연히 안전성과 임상적 유용성 등의 검증 과정을 거치고 있고 국제적으로 동일한 시스템을 적용중"이라며 "모든 안전성이 사전에 100% 검증되는 시스템은 없는 만큼 유용성과 안전성이라는 종합관리 차원에서 사후 검증을 통해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순헌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과장은 "이번 규제완화는 가장 중요한 환자의 건강에 무게를 둔 가운데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불필요한 중복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며 "새로운 의료기기가 신속하게 도입돼 적용돼 향상되는 환자의 편익도 적지 않은 만큼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조만간 후 평가 기준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겠다."고 덧붙였다.
1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체외진단검사 의료기기, 신의료기술평가 면제 문제없나' 토론회에 참석한 각 계 관자들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기종 기자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