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은 외국인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인도적 체류를 허가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이승원 판사는 외국인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소송에서 “A씨가 귀국할 경우 생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로써 A씨가 난민으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인도적 체류는 허가돼 대한민국에 머무를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공포가 있어야 하는데 A씨가 주장하는 사정이나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일반적으로 징병제 국가에서 징집거부에 대한 처벌은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없고, 징집거부 이유가 병역에 대한 반감이나 전투에 대한 공포라면 난민 인정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A씨가 2년반 동안 군복무를 했을뿐만 아니라 반정부 시위 참여 등 정치참여를 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정부가 평상시보다 병영 기피, 탈영 등에 가중한 처벌을 하고 있다고 말하나 A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정부가 징집거부자를 자신을 반대하는 정치적 견해를 표명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난민인정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A씨가 난민신청병영 이외 인도적 체류 허가를 구했고, 이에 대한 심사가 별도 절차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난민인정심사라는 단일 절차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A씨가 별도 서면으로 인도적 체류 허가를 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난민인정신청 행위에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에 인도적 체류라도 허가해달라는 의사 표시가 포함돼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서울출입국은 행정청으로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등을 행정행위의 목적과 당사자의 신청행위와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는 경우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면 인도적 체류를 허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서울행정법원 관계자는 “난민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이더라도, 인도적 견지에서 고문 등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 등으로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당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난민당국은 인도적 체류허가를 해왔다”며 “그간 난민당국은 난민신청자가 인도적 체류허가를 신청할 권리가 없고, 인도적 체류허가를 하지 않더라도, 그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불복할 수 없다는 입장”다고 해석했다.
또 “난민당국이 인도적 체류허가 여부를 자의적으로 결정해도 이에 관해 사법심사를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 2016년 2월 대한민국에 단기방문 체류자격으로 입국해 다음날 "귀국하면 징집돼 전쟁에 참여해 죽을 수 있다"며 서울출입국에 난민인정신청을 했으나, 서울출입국은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를 인정할 수 없다”며 난민불인정처분했다. 이에 A씨는 법무부장관에 이의신청을 했고 역시나 기각돼 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법정 내부 사진. 사진/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