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기타는 아트다…영원한 ‘록 히어로’ 슬래쉬

6년 만에 내한 '건즈 앤 로지스'의 기타…예스24라이브홀 1800여 관객 포효

입력 : 2019-01-15 오후 8:01:1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14일 저녁 8시 반 무렵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 긴 곱슬머리에 탑햇을 쓴 이가 레스폴 기타를 치켜 들자 1800여명이 일제히 포효하기 시작했다. 록 그룹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밤 기차(Nightrain)’가 출발할 시간이었다.
 
다시 그가 한 발로 탭댄스를 추며 무대 중앙까지 이동했다. 기타의 프렛 부분을 하늘 높이 치켜 들더니 ‘Nightrain’의 후렴구를 멋스럽게 늘어 뜨렸다. 세계 음악사에 거대한 족적이 된 밴드의 데뷔작 에피타이트 포 디스트럭션(Appetite For Destruction·1987)’ 수록곡. 앰프에서 반복 악절이 폭주하듯 터져 나오자 관객들의 주먹 손이 앞뒤로 연신 일렁였다. ‘달리는 화물열차처럼 짐을 싣고/ 비행기처럼 훨훨 날아/ 골이 빈 것 같은 느낌으로/ 오늘 밤에 한 번 더!’
 
탑햇을 쓴 슬래쉬(오른쪽)와 마일스 케네디 밴드. 사진/에이아이엠
 
1985년 결성된 건즈 앤 로지스는 메탈리카와 함께 아메리칸 록의 자존심으로 꼽히는 팀이다. 하드록과 LA메탈을 중심에 두되 블루스, 펑크 등을 조합한 이들의 음악은 메탈을 넘어 록, 팝 음악 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세계 1억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2012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도 했다.
 
기타리스트 슬래쉬(Slash)는 이들의 중심에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에 이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넘버 투 기타리스트. 거친 질감의 연주와 서정적인 슬로우 템포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밴드의 중추적 사운드는 모두 그의 몫이었다.
 
2010년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건 솔로 앨범을 내고 투어도 이어오고 있다. 이번 내한은 2011, 2013년에 이어 세 번째로, 가장 최근에 낸 앨범 '리빙 더 드림(Living The Dream)'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6년 전 내한 때처럼 보컬 마일스 케네디와 그의 밴드가 함께 했다.
 
이날 저녁 650분쯤 무대 암전과 함께 긴 머리의 사내들이 등장하니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천둥 같은 드럼 박자에 맞춰 기타 3대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콜 오브 더 와일드(Call of the wild)’로 포문을 연 밴드는 할로(Halo)’, ‘스탠딩 인 더 썬(Standing in the sun)’, ‘백 프롬 칼리(Back from cali)’ 총 네 곡을 쉼 없이 내달린 뒤에야 한국어로 첫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레스폴을 들고 연주에 집중하는 슬래쉬. 사진/에이아이엠
 
멘트는 주로 멤버들의 몫이었고, 슬래쉬는 과묵했다. 멘트라곤 2시간 여의 공연 시간이 끝나기 전 보컬을 짤막하게 소개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관객들은 그의 기타가 내는 말에 더욱 더 주목했다. 모든 곡은 슬래쉬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전개되며 끝이 났다.
 
슬래쉬는 연주자라기보단 예술가에 가까웠다. 무려 4kg에 달한다는 레스폴 기타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그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 발로 탭댄스를 추며 기타를 연주하거나 무대 중앙 발판에 다리 하나를 걸치고 기타 세계를 보일 때마다 객석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리빙 더 드림투어인 만큼 새로운 곡들이 끊임 없이 연주됐다. CD 속 박제돼 있던 사운드들은 필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슬래쉬의 속주, 흥을 돋우는 멤버들의 에너지 속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듯 했다.
 
다소 묵직하고 거친 질감의 솔로곡들이 귀에 익지는 않았지만 곡마다 늘어 뜨려지거나 변주되는 슬래쉬의 기타 소리는 이날 라이브의 백미였다. 건즈 앤 로지스의 ‘Nightrain’와 솔로곡 위키드 스톤(Wicked stone)’아나스타샤(Anastasia)’ 등에서는 최소 2분에서 4분 이상 원곡이 자유롭게 늘어났다. ‘록 히어로슬래쉬의 신들린 아트를 온 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6년 만에 열린 슬래쉬의 내한 공연. 사진/에이아이엠
 
이날 2곡의 앙코르를 포함, 22곡을 쏟아낸 후에야 슬래쉬는 활짝 웃어 보였다. 전차 같은 사운드가 2시간 여 관객들의 귀를 부서질 듯 훑고 지나간 후.
 
6년 여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그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50대의 건장한 예술가 슬래쉬를 영영 못 보는 건 아닐까.
 
아쉬움에 잠길 무렵 조니 캐쉬의 엔딩곡이 홀에 가득 울려 퍼졌다.
 
우린 다시 만날 거에요/ 어디일지는 몰라도/ 언제일지는 몰라도/ 하지만 알아요/ 우리가 다시 만날 거란 걸/ 햇빛 찬란한 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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