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칼럼니스트
요즘 드라마 <SKY 캐슬>이 화제라던데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을 유명대학 인기 과에 보내려는 부모들, 소위 ‘대한민국 상위 1%’들의 자녀 입시를 둘러싼 백태를 파헤치는 얘기라고 들었습니다. 상위 1%? 어떤 상위이며, 그 기준은 뭐죠? 그 드라마에 ‘좋은 집안’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면서요? 실생활에서도 “집안 좋다”거나 “명문가 출신”이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특히 혼담 오갈 때 그러던데, 들어보면 대개는 돈 많거나, 부모나 조부모가 ‘한 자리’ 지낸 집을 이르더군요.
그런데 좀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집안들 대개는 친일파 후손이거나, 검은 돈으로 재산 일으킨 경우입니다. 물론 드물게 청부, 즉 깨끗하고 정직하게 일해서 부자가 되거나, 열심히 노력해 윤택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주 드물게는 더불어 사는 삶을 대대로 실천하며 부의 참 모습을 보여온 ‘경주 최 부자집’ 같은 집안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티를 잘 안내더라구요. 어디 기부를 해도 몰래, 생색내지 않으면서 하시구요. 참 이상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돈 냈다는 게 신문에 우표만한 사진으로라도 실려야 당연하다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행여 남이 알까 쉬쉬하며 몰래 하고….
이런 차이의 근본은 생각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인 듯 합니다. 분식회계나 노동자착취에 탈세는 기본이고, 직원들이 성실히 일해서 일군 회삿돈 가져다가 자기 집 사치에나 쓰고, 유명 브랜드 옷과 가방에 심지어 슬리퍼까지 밀수하고, 비서나 기사를 노예처럼 부리다 폭언에 폭행까지 하는 삼성 한진 롯데 효성…이루 셀 수도 없는 부자들이 명문가입니까? 자식들끼리 부모 재산 놓고 쌈박질하다 법원까지 가는 게 좋은 집안입니까? 여러 정부에 걸쳐 고관대작 다 지내다 결국은 ‘가막소’에 간 김기춘씨 같은 집안을 좋은 집안이라 할 겁니까? 치매와 거동불편을 핑계로 재판에 나오라는 법원 명령은 깔아뭉갠 채 골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러다니는 전두환씨를, 대통령까지 지냈으니, 명문가라 할 겁니까? 그들은 범죄집단입니다.
우리 의식 속의 이중적 가치관이 사회를 천박하게 만든 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탈세건 착취건 그저 무슨 짓을 해서든 돈 긁어모아 과시하는 사람들까지도 싸잡아 “집안 좋다”고 하니, 아이들이 “나중에 크면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겁니다. 아이들 탓 할 일 아닙니다. 일상 생활 속, 우리 머리 속에 깊게 밴 이런 이중적 자세가 도착된 가치관을 낳는 겁니다.
‘싸가지’라는 단어를 욕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싸가지는 “싹수(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의 강원, 전남지역 방언”입니다. 원 뜻은 욕이 아니라, 그 정반대인 단어입니다. 그 싸가지를 중시하는 집안, 겸손과 범절을 아는 집안, 대대로 정의롭게 살아온 집안, 나라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집안을 명문가라 부르는 게 맞습니다. 이를테면 석주 이상룡 선생 같은 집안 말이지요.
‘돈 많은 것’과 ‘집안 좋다’는 건 결코 동의어가 아닙니다. 밥상머리에서부터 가르치고 본을 보이는 게 진짜 가정교육입니다. 천민자본주의, 돈만 아는 수전노…우리 사회의 치부를 꼬집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그렇게 말 할 뿐, 실제로는 ‘돈’과 ‘어떻게든 한 자리’를 부러워하고, 그런 집과 어울리려 하고, 자제들끼리 친교하게 하고, 그런 집안과 혼사맺고 싶어하는 이중적 태도가 가치관의 심각한 전도현상을 낳았습니다. 이런 이중성을 일상 생활과 일상 언어에서 고쳐나갈 때 사회의 기풍이 진작되고, 세상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 아닐까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 않습니까.
바른 가치관을 가진 부모가 본을 보임으로써 그 아이들도 자연스레 균형잡히고 사리분별 제대로 하는 집안이 ‘좋은 집안’입니다. 우리 아이들마저 천박한 자본주의와 속물 근성이 찌든 사회에서 살아가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정명(正名). 올바르게 이름 붙이는 것이 올바른 가치관과 올바른 공동체의 첫 걸음입니다. “집안 좋다”는 말, 가려서 하십시다. 마침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자, 건국 100주년입니다.
이강윤 칼럼니스트(pen337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