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노사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도 대주주인 프랑스 르노측의 생산물량 배정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던지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사실상 국내 철수 가능성을 공식 시사한 것이라 한국지엠 못지 않는 국내 자동차 산업에 위협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 노동조합은 오는 13일과 15일 부분 파업을 진행한 후 상황에 따라 총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노조의 대응은 최근 로스 모저스 르노그룹 제조총괄 부회장의 경고 발언 이후 나왔다.
모저스 부회장은 지난 1일 르노삼성에 보낸 3분짜리 동영상을 통해 노조 파업이 지속된다면 로그 후속 차량에 대한 논의가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내면서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지속 가능성과 고용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산 경쟁력이 확보돼야 하며, 이런 사실을 회사와 노주 모두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 관계자는 “부회장 발언은 원론적인 내용이며 회사 사정과 연관지어 확대해석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룹 부회장의 노조를 겨냥한 발언은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노조에 대한 압박, 장기적으로는 국내 철수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르노삼성 노사는 지난해 6월 상견례 이후 8개월째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타결을 짓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노조는 28차례에 걸쳐 총 104시간 동안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르노삼성 노사는 2015~2017년 3년 연속 무파업 임단협 타결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해 교섭에서 노조는 기본급 10만667원 인상, 자기개발비 2만133원 인상, 단일호봉제 도입, 특별격려금 300만원 등을 요구했고 사측은 어려운 경영상황을 고려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지난 3년간 회사에 양보해왔기 때문에 이번 임단협에서는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킨다는 목표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출범한 노조 집행부가 강성으로 평가받는 점도 노사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박종규 노조 지부장은 지난 2011년 르노삼성 지회를 설립하고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가입을 주도했다.
르노그룹 부회장의 경고에 르노삼성 노조가 반발하면서 닛산 로그 물량 배정이 불투명해졌다. 르노삼성 부산공장 모습. 사진/뉴시스
르노삼성은 지난해 인기모델의 신차 출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완성차 5개사 중 판매량 기준 최하위를 기록했다. 내수는 9만369대, 수출은 13만7208대로 전년 대비 각각 10.1%, 22.2% 감소했다. 지난해 ‘클리오’와 ‘마스터’를 출시했지만 3652대, 265대 판매에 그쳤다. 올해 1월 ‘QM6’는 2845대로 꾸준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SM6는 1162대로 37.4% 감소했다. SM3(307대), SM5(280대), QM3(196대) 등 다른 모델의 부진도 지속되고 있다.
올해 특별한 신차 출시 계획이 없는데다가 오는 9월 만료되는 닛산 로그 위탁생산이 중단되기 때문에 대체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12월말 부산시와 전기차 ‘트위지’의 생산기지 부산 이전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트위지의 지난해 내수 판매는 1498대에 불과했으며, 다른 업체들의 전기차 라인업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면서 “생산기지 이전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기대만큼 큰 의미를 갖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국내시장에 출시되는 신차에 르노삼성이 아닌 르노의 ‘로장쥬’ 엠블럼을 부착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지난해 국내에 선보인 클리오, 마스터 모두 해외공장에서 만들어졌고 르노의 엠블럼을 달았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르노삼성은 쌍용차, 한국지엠과 비교해 신차 라인업이 부실해 실적개선을 이루기가 어렵다”면서 “국내에 신차를 선보여도 이미 해외시장에 출시된 모델이 많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GM에 비해 르노는 해외시장 철수에 적극적이지 않지만 본사가 물량을 배정하는 시스템 속에서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