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태관은 참 멋있는 친구였어요. 힘들어도 힘들다 한 적이 없었고, 아파도 아프다 한 적이 없었어요. 아마 지금도 그 곳에서 열심히 드럼을 치고 있을 겁니다.”
지난 24일 홍대 구름아래소극장에서 열린 봄여름가을겨울의 데뷔 30주년 공연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의 마지막 30회차. 공연이 중반부에 이를 무렵, 기타리스트 김종진의 언어가 글썽였다. 잠시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그는 힘겹게 다시 마이크에 입을 댔다.
“어릴 적 저희끼리 무대에 오르면 늘 하던 얘기가 있었습니다. ‘감정에 절대 지면 안된다’, ‘감정을 컨트롤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참 그게 안되더군요. 특히 이 곡을 부를 때 만큼은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전태관과 마지막으로 작업한 곡 ‘고장난 시계’ 전주 부분이 흘렀다. 기타를 들고 흐느끼는 그의 뒤로 밝게 웃는 드러머 전태관의 흑백 사진이 유유히 흘러갔다. 울음을 먹다시피 한 김종진의 보컬음이 중단됐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은 없다 하네요/ 그건 고장 난 시계라 하네요/ 그럼 내 시계는 망가졌나 봐/ 자꾸 뒤로만... 자꾸 뒤로만... 거꾸로 흘러 만가네’
“옛시인이 눈물이 강이 돼 흐른다고 얘기했었는데 이제 이해가 갑니다. 참으려 해도 흐르는 눈물이 얼떨떨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좌)과 전태관. 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27일 세상을 떠난 고 전태관은 그에게 평생의 동료이자 친구였다. 1986년 고 김현식이 결성한 밴드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로 데뷔한 둘은 이후 30년 동안 함께 합을 맞추며 음악 여정을 걸어왔다. 퓨전 재즈부터 블루스, 록,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들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자존심’으로 불려왔다.
이날 공연에서 종진은 부제처럼 ‘한 때는 우리 곁에 있었지만 사라진 것들에 대하여’ 연주하고 노래했다. 공연 중반까지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중간중간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태관에 대한 마음과 진심이 느껴지곤 했다.
“전봇대, 철새, 우표, 전화기,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오시던 통닭. 우리 곁에 있었지만 이제는 볼 수없는 것들이 많죠? 30년 음악 하면서 세월도 참 많이 흐른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느끼시는 것처럼 이 부제는 저희에 대한 것들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오늘 이 곳이 여러분의 공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신중현 ‘미인’의 편곡 버전으로 시작된 공연은 봄여름가을겨울을 대표하는 곡들로 꾸며졌다. 드럼과 기타, 베이스 등 기본 구성에 건반과 신디사이저, 색소폰, 코러스 등을 더해 밴드를 ‘앙상블’화시켰다. 1988년 첫 데뷔 때부터 밴드의 지난 30년 세월을 돌아볼 수 있는 곡들이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종진은 관객들과 슬픔은 반으로 덜고 행복은 곱절로 불렸다. 80~90년대 발표된 곡을 할 때는 관객들과 ‘에그쉐이크’를 흔들며 세상사의 아픔을 달래기도 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매일 날씨가 맑으면 말라 죽는대요. 궂은 날도 있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이 세상은 전쟁터 같지만 그럴 때마다 제가 드린이 에그쉐이크를 흔들어 보시길 바라요. 열심히 달려온 스스로에게 마음 속으로 응원 한마디 해보시면서요.”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주년 마지막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온 기타리스트 김수철.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날은 70년대말 ‘작은 거인’으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김수철이 게스트로 나섰다. 김종진은 “저와 태관이 데뷔하기 전부터 선배님이 불러주셔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태관이와 함께 연주하고 끝나면 항상 데려다 주시고, 생선도 사다주셨다”며 김수철을 소개했다.
“12년 만에 무대에서 기타를 든다”며 멋쩍게 웃은 김수철은 김종진과 함께 즉흥으로 잼을 맞춰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냈다. 또 관객들의 사연을 읽는 순서에서는 전태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목이 메인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다 “우리 곁을 떠났지만 ‘봄여름가을겨울’ 공연이 '전회 매진이 됐다'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종진이한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한다”고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공연은 후반부로 갈수록 긍정과 환희의 세기를 더해갔다. 종진은 “꿈을 잃지 않고 함께 시대를 함께 여행하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이제 왠만한 파도는 겁도 안난다”고도 했다. 퇴장 후 마린 룩을 입고 등장한 그는 미발표곡이었던 ‘컴 세일 어웨이’를 관객들과 함께 부르며 “인생을 함께 항해 하자”고 밝게 말했다.
낮 3시에 시작한 공연은 어두컴컴한 저녁 7시가 돼서야 막을 내렸다. 4시간 공연의 대단원을 끝낸 마무리 곡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 “다 같이 브라보를 외칩시다”라는 종진의 멘트에 관객들이 객석에서 준비한 노란 종이 비행기들을 무대 중앙으로 날렸다.
쏟아지는 비행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가 환하게 웃었다. 음악으로 '친구와 우정을 지킨' 그의 표정이 맑게 갠 하늘과 같았다.
“오늘 제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습니다. 뭐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도화지처럼요. 여러분 덕분에 아주 홀가분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과 기타리스트 김수철(가운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