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일원화·대중화·비폭력…3·1운동 정신 되살려야”

박남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 7개 종단 모아 추진위 꾸려
“미래세대 계승하려면 재단·기념관 꼭 필요”…북에 유적공동조사 제안도

입력 : 2019-02-2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지난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자주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천도교·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처럼 종교 지도자를 한 자리에 모은 것은 다름아닌 ‘3·1운동’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던 그 때 종교 지도자들이 한마음으로 만세를 불렀다면, 이날 모인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본받고자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라는 민간단체를 꾸렸다. 종교 지도자들이 힘을 합친 의의와 앞으로의 계획을 박남수 추진위 상임대표(천도교 전 교령)를 만나 들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화홀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100주년 사업설명 기자회견에서 왼쪽부터 김대선 원불교 교무, 박경조 성공회 대주교, 박남수 상임대표, 박인주 공동대표, 법륜 스님이 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추진위가 꾸려진 계기가 궁금하다
2005년 당시 제가 유일하게 종교인 친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 때 친일인명사전 만들 때다. 당시는 교령이 아니었고 종단의 한 간부였다. 친일 청산과 위안부 문제 우리 스스로 정리할 건 정리해야 할 것 아니냐. 천도교도 친일 행위 있었다. 교단에서는 나를 나무랐지만 정리하는 것 외에는 방법 없다고 생각해 사과했다. 그리고 바로 100주년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종교인들 의견일치, 쉽지 않았겠다
특별법을 만들려면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2014년부터 시작했다. 각 종단과 종교 원로, 시민사회, 그 뿐 아니라 대한민국만 3·1운동 한 게 아니다. 중국, 러시아, 연해주, 미국, 일본 교포들까지 100년 만에 종교인이 중심으로 광범위한 사람이 모였다는 점은 성공이다. LA 설명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 인사인 이갑성 선생의 딸과 사위, 독립운동가 안호상의 아들과 며느리 다 참석했다. 기독교 큰 어른 만나서 말했더니. “장로교와 감리교가 해보려고 했는데 못했다”, 불교의 큰 어른도 “내 죽기 전에 소원이 풀릴 거 같네요”라며 어른들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다.  
 
3·1운동은 종교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세계 어느곳에도 불교, 기독교, 천도교가 종교 교리 내려놓고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함께 하자는 게 가능하지 않다. 오늘 우리에게 종교인 모여서 대국민 통합 운동을 하라고 정부가 100억 줬다고 가정하면 그게 가능하겠나. 각자 행사를 따로 광화문, 시청, 천도교에서 하고 그건 3·1운동 아니다. 어디서 하든 다같이 하는 게 3·1운동이다. 육체가 아니면 정신으로라도 모여보자.
한국 사회는 다종교다. 3·1운동이 다종교의 시발점이다. 반만년 역사 속에서 상대를 포용하려는 토양이 있었다. 할머니는 집에서 제사, 할아버지는 성균관에 나가고, 어머니는 교회 나가고, 아버지는 성당에 나가도 용서가 되는 나라다. 반만년 역사 내려온 것이 3.1운동 때 한 단결을 하면서 평화를 가져왔다.
 
‘3·1운동 정신’이란 무엇인가
한가지 목표를 위해 ‘일원화’, 혼자는 절대 안 되기 때문에 ‘대중화’, ‘비폭력’으로 평화적으로 하는 것이 3·1운동 정신이다. 4·19, 5·18, 6월항쟁, 촛불로 이어진다. 나라가 위태할 때마다 나타나는 게 3.1운동 정신이다. 가장 잘 표현한 게 광화문 촛불이다. 세계 어느 곳도 그런 시위없었다. 애도 할아버지도, 청년도 노인네도. 다함께 나왔는데도 평화였다. 일부가 과격 시위하자고 하면, 오히려 안된다고 말렸다.
 
남북공동사업 방향은 무엇인가
1919년에는 분단 안 됐다. 만세 부른 3월1일 당일 7개 도시가 만세를 불렀는데 남쪽 서울 1군데, 나머지는 북쪽 6곳이었다. 천도교도, 기독교도 북쪽에 훨씬 강력한 조직을 갖고 3·1운동을 준비했다. 북쪽에서 3·1운동 많이 있었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 아는 사람도 연구도 없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진정한 남북 평화 화합을 어떻게 할거냐, 당신과 내가 한핏줄, 만세를 같이 불렀다는 것부터 접근해야 한다. 3·1운동 화두는 다함께 다시 시작이다. 북쪽에 함께해야 한다고 시작부터 제안했다.
정치적 행사도 아니고, 역사 바로세우기도 아니고. 6개 도시를 남쪽 청년·학생이 함께 걸어보자. 만세 부른 곳이 있구나. 6개 중에 절반도 좋고, 아니면 1곳도 좋다. 그리고 북쪽은 3·1민중봉기라고 칭하는데 운동이든 민중봉기든 같이 이야기해보자. 북쪽을 설득시키는 게 아니라, 헤어져서 못 들어본 봉기사 또는 3·1운동사를 우리가 듣는 시간 가지자. 그래야 손을 잡든 말든 할 거 아니냐.
작년 99주년은 함께 못했지만 북쪽은 종교협의회 중심, 남쭉은 우리 추진위 중심으로 기념식을 했다. 기념축사는 서로 교환하며, 장소가 달랐을 뿐이지 함께 한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3·1운동 100주년 마지막에 있는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 가장 중요한 게 남북 함께, 서로 이해, 공유하는 일이다.
 
기념관·기념재단이 왜 필요한가
기념관이 많은데 3·1운동 기념관만 없다. 거창한 빌딩이 아니다. 지어놓고 빈 공간에 대관을 주고 사용료 받는 곳도 아니다. 그저 기념관 유물 전시하고, 학생이 공부하고 많은 시민이 와서 3·1운동 역사를 새길 정도의 공간을 제안한다. 탑골공원 옆에 붙은 땅이 있는데 탑골공원을 탑골역사공원이나 3·1역사공원으로 고치고 그 옆에 기념관 같이 짓는다. 기념관은 작고 알차야 하며 너무 크면 탈난다.
특별법과 기념재단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3·1운동 교육을 누군가가 전담해야 한다. 세계로 뻗어나갈 운동이라면 교육 담당도 홍보할 기관도 있어야 한다. 3·1운동 학자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연구 지원하고, 해외 지도자 초대해 연수도 시키고 해야 한다. 
 
‘3·1독립선언광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3·1운동은 독립선언서, 민족지도자 33인, 3개 종단이 있는데 지금은 임시정부만 있다. 중요한 건 태화관이 33인이 독립선언서를 공식적으로 읽은 곳이다. 서울시가 백주년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간인 우리가 태화관터에 독립선언광장을 시민과 해외 동포 모금하기로 서울시와 MOU 체결했다. 지금 해외 28군데에 안내문 보냈다. 작은 광장이다. 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신이 중요하다. 아이가 와서 “여기가 운동한 곳이구나”하도록 말이다.
 
3·1운동 정신 계승, 어떻게 해야 할까
참 어려운 일이다. 미래 상징은 젊은 청년과 청소년, 어린이다. 선언문 낭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놀이문화와 SNS로 만들어 ‘3·1운동이 우리 거야’라고 생각하게끔 하는가다. 아이디어를 더 개발해 암기가 아니라 그 아이도 3·1운동에 참여하도록 해야한다. 반크는 21세기 독립운동가다. 놀이문화로 3.1운동 정신을 가르치는 프로그램 찾고 있다.
 
박남수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가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배부했던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앞에서 3·1운동의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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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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