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법적으로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
10년 전 ‘장자연 사건’ 참고인 윤지오씨가 검찰 조사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는, 끊임 없이 진술의 신빙성만 지적하려 들며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인 사정기관에 대한 불신이 느껴진다. 한 달 뒤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에서는 그나마 경찰이 접대강요 공범 및 배임수재 혐의로 입건한 감독 1명과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한 금융인 1명 마저 무혐의 처분이 났다. 폭행과 성상납, 술자리 접대를 강요했다는 기획사 대표만 몇 년 뒤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뿐이다. 윤씨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23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고 다시 시작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재조사 역시 그때와 다를 것 없는 결말을 앞두고 있다. 윤씨가 용기 내 책을 출판하고, 생방송 인터뷰를 하고, 전 매니저와 함께 “당시 공개된 문서는 유서가 아닌 문건”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까지 던졌지만 법무부는 과거사위의 활동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마침 마약·몰카·연예인을 한 데 뭉친 '버닝썬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보름 남은 과거사위의 재조사 결과 최종 발표에 속 시원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당시 문건에는 말 그대로 사회저명인사들이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성을 가진 한 언론사 3인방이나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기업총수 등 인물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돼 보도됐다. 사실 재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이들이 제대로 처벌받을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았다. 공소시효도 지났다. 다만 그때보다 더 많은 진실이 밝혀지길 바랐다. 그 사이에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촛불'과 '미투', 국민청원 같은 대중적 결집력이 있다면 그때는 넘지 못한 단단한 벽을 부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떠났던 윤씨도 그래서 한국에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검찰과 경찰,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의 기억을 극복하고 또다시 그들을 통해 그때의 얘기를 세상에 하고, 열세 번째 증언을 할 결심은 ‘그때와는 다를 것’이란 희망 없이 실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믿음을 저버리고도 사회가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을까. 10년 전 스러져간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굳이 시효가 필요한 지 의문이다.
최서윤 사회부 기자(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