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1985년 존 스컬리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고 스티브 잡스를 회사에서 퇴출시켰다. 잡스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차고에서 애플을 세운지 약 10년만의 일이다. 잡스 퇴출의 직접적 사유는 매킨토시의 부진이었지만 내막에는 잡스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따른 이사진과의 심각한 마찰이 있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1997년 잡스는 파산 직전까지 몰린 애플에 임시 CEO로 복귀했다. 잡스는 2001년 '아이팟'을 내놓으며 애플 부활의 신호탄을 쏘더니 2007년에는 전세계 휴대폰 시장의 판도를 뒤바꾼 '아이폰'을 출시, '애플=잡스'라는 정체성을 완성했다.
지난 20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컨퍼런스&엑스포에서 고 스티브 잡스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기조연설 도중 아이폰 신제품을 꺼내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AP
애플과 잡스의 이 같은 관계는 미국 특유의 기업문화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의 사외이사 제도에 해당하는 미국 기업의 독립이사제도는 기업 성장에 해가 된다면 창업자도 예외 없이 해임시킨다. 잡스는 애플의 구원투수로 다시 돌아왔지만 자신들이 세운 회사와 이별을 한 사례가 더 많다.
미국 대표 통신장비 업체인 시스코 시스템즈도 성장 초기 창업자들과 전문경영진의 갈등을 겪었다. 시스코는 1984년 스탠포드 대학교의 엔지니어와 컴퓨터 시설 관리 책임자로 근무하던 레오나드 보삭과 샌디 러너가 설립했다. 창업 4년차이던 1987년에는 사업 확장의 필요에 따라 세콰이어 캐피털로부터 25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돈 밸런타인 세콰이어 캐피털 대표가 시스코의 지분 30%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고, 보삭은 시스코 최고기술담당자로, 러너는 고객서비스팀 부사장으로 각각 활동했다. 1980년대 말 개인 PC 보급이 확대되며 라우터 수요가 급증했고, 시스코의 사세도 대폭 확대됐다. 1990년 2월에는 증시에까지 상장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같은해 8월 보삭과 러너는 회사를 떠나게 됐다. 신임 경영진들이 독단적 업무 처리를 이유로 밸런타인에 러너의 해임을 요구했고, 밸런타인이 이를 시행에 옮긴 것이다. 러너와 보삭은 회사를 떠난 그 해 말 시스코 지분을 모두 처분, 회사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시스코는 1995년 CEO로 취임한 존 챔버스가 20년간 회사를 운영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이끌었다.
미국 피자브랜드 파파존스의 창업자 존 슈내터는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퇴출된 후 소송전도 치르고 있다. 앞서 슈내터는 지난 2017년 말 미국프로풋볼(NFL) 선수들의 무릎꿇기 퍼포먼스를 비판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CEO직을 내려놨다. 그로부터 약 7개월 후 마케팅회사와의 컨퍼런스 콜에서 흑인 비하 발언을 해 또 다시 구설에 올랐다. 이 사건으로 파파존스의 주가가 급락하는 등 여파가 커지자 이사회는 그의 의장직 사임을 권했다. 슈내터는 이사회의 요구대로 의장에서는 물러나고 29%의 주식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이사회 임원직만 간신히 유지했으나, 돌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사회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에 불복, 회사를 고소한 것이다. 회사 측은 "소송에 대응하는 것은 불필요한 시간낭비"라고 일축하고 슈내터의 흔적 지우기에 몰두했다. 피자 상자는 물론, 모든 광고와 마케팅 자료에서 그의 얼굴을 삭제했다. 또한 최대주주인 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독소 조항(poison pill)을 승인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