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약계층 연금안전망에 '구멍', 근로빈곤에 노후마저 '위태'

민원 넣어도 해결책은 없어…전문가들 "국회가 나서 법 개정 해야"

입력 : 2019-03-31 오후 4:05:19
[뉴스토마토 이진성 기자] #.서울 식음료가게에서 2년간 근무해온 김희숙(가명·40대)씨는 최근 사업장이 국민연금을 3개월째 체납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4대 보험을 매번 월급에서 제하고 받았던 김씨는 사업장을 찾아가 사장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회사 여건상 지급을 못했다는 답변 뿐이었다. 국민연금 지사에도 문의했지만 해결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조선업종에서 12년간 근무한 강준이(가명·60대)씨는 현재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0년에 미달해 연금으로 지급받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보니 근무한 사업장 여러 곳에서 몇 차례씩 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은 것이다. 강씨가 국민연금을 매월 연금으로 받기 위해서는 계속가입을 통해 10년에 미달한 개월 수를 채우거나, 아니면 손해를 감수하고 일시불로 받는 수 밖에 없다. 국민연금 지사에서는 사업장을 고소하더라도 사실상 부도 직전 상태라 압류로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며 스스로 메꿀 것을 권유했다.
 
31일 <뉴스토마토> 입수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최근 3개월 체납사실통지 발송 건 수(사업장 대상)'에 따르사업장 체납으로 인해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근로자가 연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뉴시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취지로 마련한 국민연금이 적어도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사용자의 잘못이 분명함에도 해결책이 없는 현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김희숙씨는 31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사업장 체납으로 연금 가입기간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주변에 많다"며 "사장은 여력이 없다며 민사소송을 하든 형사고발을 하든 맘대로 하라는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4대 보험을 제하고 월 140만원을 받았다는 김씨는 도저히 민사까지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업체 사장도 이러한 현실을 알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국민연금 징수 업무를 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를 찾아 민원도 넣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현행법상 해결해줄 수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사업장 체납으로 통보를 받은 근로자가 연 100만명씩 추가로 발생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비록 일부 사업장이 뒤늦게 납부하더라도 연간으로 추가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어 실제 전체 연금 피해를 본 근로자들은 수 백만명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 사업장 체납 민원은 건강보험 민원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많이 들어온다"면서 "분명 잘못된 제도임에도 민원인을 위로해주는 방법 밖에 없어 속상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연금의 징수 업무를 건강보험에서 하고 있는 탓에 관련 민원이 쏠리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사업자 체납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20개월 미만으로 적용되면 일부 이자를 더한 반환일시금으로 받거나 계속 가입을 통해 이를 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국민연금은 납부기간이 10년이 안되면 만 60세에 그동안 납부한 보험료를 돌려받는다. 다만 60세 도달 시점에서 가입기간이 부족해 연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면 반환일시금을 받지 않고 계속 가입을 신청하면 나중에라도 국민연금으로 지급 받을 수 있다.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선업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는 임상민(가명·50대)씨는 "답답한 마음에 압류라도 빨리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공단에 물었더니 담당자 마음이라는 답을 들었다"며 "기약없는 압류도 해결책이 아닌데 대응도 미진해 사실상 피해를 고스란히 떠 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뒤늦게 대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법 개정뿐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즉 국회가 나서지 않고서는 딱히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연 1회 발송하는 납부내역 횟수를 늘려 체납사실을 근로자가 보다 일찍 알 수 있도록 해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노후 보장이라는 본연의 연금 기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제도화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세종=이진성 기자 jinl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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