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창원성산의 선택은 금속노조 출신의 젊은 진보 정치인이었다. 4·3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정의당 여영국 의원은 30년 넘게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에 몸담은 인물이다. 1986년부터 노동운동가로 살아오며 2010년에 경남도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했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그는 이제 권영길·노회찬 전 의원의 뒤를 이어 '진보정치 1번지' 창원성산의 상징성을 이은 국회의원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의당 여영국 의원이 15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 주최 오찬간담회에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9일 국회 의원회관 510호의 문패가 '노회찬'이라는 이름에서 '여영국'으로 바뀌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백팩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여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창원성산 보궐선거에서 유세에 나섰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이날은 여 의원이 국회 입성을 알린 지 엿새 만이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었던 창원성산 보궐선거의 개표 과정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때였다. 보궐선거에서 역전의 순간 당시 심정이 궁금했다. 여 의원은 "창원에서 여러 번 선거를 치러봤기 때문에 100표 내외의 초박빙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면서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짜릿하긴 하더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 후 오히려 '여영국이 무조건 된다'는 생각에 투표하지 않은 분들이 많았다"며 "투표 당일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 '꼭 투표해달라'는 호소문을 유권자들에게 보냈다. 그때야 투표장으로 향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했다.
"창원공단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 위해 활동"
여 의원은 선거유세 처음부터 당선 소감문을 읽을 때까지 '노회찬 정신'을 강조했다. 당선되고 다음달 노 전 의원의 묘소 앞에 국회의원 당선증을 올리기도 했다. 정치인 '노회찬'은 여 의원에게 여러 모로 특별한 존재다. 여 의원은 "노회찬의 정신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투명인간'의 고단한 삶을 바꾸고 그들을 호명하는 정치"라며 "창원공단의 노동자 등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창원성산 보궐선거의 승리는 정의당의 지역구 1석을 지켰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창원성산 시민들이 노 전 의원에 이어 자신을 선택해줬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오는 듯 보였다. 여 의원은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먹고 살기 힘들다'는 창원 경제의 어려움을 몸소 느꼈다고 했다. 그는 "어디를 가나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며 "국민들 입장에서는 당장의 삶이 나아지지 않으니 정부에 대한 불만이 쌓인 듯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를 정쟁의 소재를 삼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행보에 대해서는 날을 세웠다. 그는 "한국당은 정권심판론과 여영국 흠집 내기, 심지어는 '강찍황'(강기윤을 찍으면 황교안이 대통령된다)에만 몰두했지 기억에 남을 공약은 내지도 않았다"며 "그들이 제시하는 (경제 문제) 해법이라는 게 뻔하다. 소득주도성장과 노동준중사회를 공격하고 다시 대기업 중심의 경제, 노동을 배제한 정책으로 회귀하겠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한국당의 탈원전 정책 폐기 주장에 대해서도 "정치 공세이자 잘못된 진단"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여영국 의원이 4일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노회찬 전 대표의 묘소를 찾았다. 사진/뉴시스
"대기업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근본 해결책"
여 의원은 창원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문재인정부에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정책을 더욱 과감하게 실행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예민한 산업은 제조업"이라며 "그 중에서도 협력사, 하청업체의 수가 상당하다. 이런 업체의 부담을 낮추려면 대기업 중심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영업자의 경우에도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은 건물 임대료"라며 "최저임금 인상이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 중심의 구조, 건물 임대료의 비합리성을 조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창원이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되도록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현재 진해구만 국가균형발전법상의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창원 지역 경기침체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창원은 두산중공업이 발전 설비 분야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에 따른 협력업체 위기, 노동자 생존권 위협 문제, 아직 회복세가 가파르지 않은 지역 조선 산업, 한국지엠의 창원공장 투자 축소 움직임 등 여러 방면에서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될 조건이 됩니다. 창원시, 경남도와 구체적인 현안을 파악한 다음 정부에 강력하게 지정을 건의하겠습니다."
"재료연구소 승격 법안 통과 주력"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창원의 특례시 지정 문제는 국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여 의원은 "민주당과의 공동후보로 당선이 된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공단에 노동자의 건강을 관리하는 '노동자 건강지원센터' 의무화도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재료연구소를 소재연구원으로 승격시키는 일도 마찬가지다. 노 전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여 의원은 "소재연구원을 중심으로 창원기계공고-창원대-창원산업단지를 연계해 소재혁신으로 제조업 부흥을 주도할 '제조업 혁신 산학연 클러스터'를 조성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중당과의 관계 개선과 관련해선 "서로 협력하고 '윈윈'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는 "손석형 위원장(민중당 후보)에게 단 둘이 소주 한 잔 하자는 제안도 했고, 실제로 자리를 가질 계획"이라며 "범진보 계열이 힘을 합해야 창원시민들도 더 큰 힘을 실어주실 것이다. 당장은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노회찬 의원처럼 말과 행동 하나로 국민들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할 것"이라며 국회의원으로서 포부를 드러냈다. 그는 "항상 겸손하고 변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며 "낮은 곳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정치를 해왔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부터 배웠다. 그것이 진보정당의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하고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라고 피력했다.
정의당 여영국 의원이 9일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박주용 기자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