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너, 너무 웅얼거려서 목소리가 잘 안들려. 좀 더 크고 확실하게 말해."
이것은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건네는 '질책'이 아니다. 자신이 면접을 봐서 뽑았던 후배 직원이 건네는 '직언'이다.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의 저자 박정준씨는 아마존 입사 2년차 때 후배로부터 이 쓴소리를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얘기한다.
'그들 대부분은 둘러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문제가 있으면 있는 그대로 돌직구로 말하는 업무상의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약점을 그렇게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준 사람이 있었던가.'
예의나 복장, 어투, 태도 보다 능력과 본질, 인테그리티(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도 옳은 일을 하는 것)가 중시되는 이 사회는 오래 한국생활을 해온 저자에게 한참 낯선 '외계'였다.
회의 도중 반려견을 쓰다듬고, 초록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닭벼슬처럼 세운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자유분방한 곳. 하지만 맡은 업무를 시간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매니저에게 조용히 불려 나가 상자 하나를 받고 해고통보를 듣는 곳. 입사 초기부터 그는 친절한 교육과정을 제공받는 대신 그곳이 철저히 '정직과 능력으로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정글'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사진/한빛비즈
저자가 지금의 세계 시가 총액 1위 기업(2019년 1월 기준)인 아마존에 입사하던 2004년은 '닷컴 버블'이 이제 막 끝나가던 시기였다. 당시 미국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에 비하면 구멍가게였던 아마존은 원대한 포부를 계획하고 있었다.
제프 베조스 회장은 온라인 서점이나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규정되던 정체성을 소프트웨어 부문으로 확장하며 '아마존 만의 사업'을 꿈꿨다. 이 모든 회사의 계획과 포부는 저자가 입사하던 첫날 오전 '간결한 오리엔테이션'으로 들은 내용들이다.
'당시엔 굳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를 점차 알게 되었다. 초기엔 반스앤드노블, 월마트, 이베이에 비교되던 아마존이 어느덧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12년 동안 저자는 '정글 문화' 속에서 아마존이 세계를 바꿔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아마조니언(아마존 직원들)' 각자는 간결하고 정직한 언어로 소통하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일을 한다. 저자 역시 입사 둘째 주부터 주요 업무에 대한 전권을 맡아 땀을 뻘뻘 흘렸던 경험을 여과없이 털어놓는다.
그에 따르면 아마존은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 '소비자에게 필요한가? 도움을 주는가?'와 같은 본질과 인테그리티에 집중한다. TV 광고 등의 마케팅은 '그럴 듯한 과대 포장'이라는 이유로 나서서 하지 않는다. 그 비용을 아껴 제품과 서비스의 종류를 늘리거나 낮은 비용을 위한 과감한 선행 투자를 하고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한다.
아마존 물류 창고. 사진/뉴시스·AP
2018년 기준 6억개의 제품군을 보유하게 된 아마존 사이트, 강남구의 절반 정도에 해당되는 막대한 규모의 물류 창고, 최대 300킬로그램이 넘는 상품을 운반하며 유통 자동화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아마존의 로봇 '키바', 개발 진행 중인 드론 배송과 사물인터넷 영역. 현재 4차 산업을 선도하며 세계를 이끌고 있는 성공 사례들을 저자는 이러한 아마존 만의 '정글 문화'와 연결 지어 설명한다.
아마존만의 철저한 고객 중심적 사고와 본질 집중은 직원들에 대한 투자 부족과 열악한 노동 환경, 경쟁 조장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받는다. 저자 역시 이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12년 동안 '탈출'을 꿈꿨다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경험과 가르침, 기업 철학이 "일과 삶의 본질을 다시 보게 했다"며 자신 만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오늘날 "여전히 도움이 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돼야 하는 것은 나 자신 이외에는 없다. 내가 아마존에서 배운 것은 경쟁이 아니다. 각자의 특별함 위에 변하지 않는 성장 원리를 적용하고, 세상에 필요한 나만의 것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