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다.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국경을 맞댄 전통 우방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 '하노이 노딜' 이후 미국의 압박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일종의 반전을 꾀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상황 속에서 러시아와 경제협력 확대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정은 동지께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각하의 초청에 의해 곧 러시아를 방문하시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방문 기간 김정은 동지와 러시아 대통령 사이의 회담이 진행되게 된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밝히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은 24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루스키 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푸틴 대통령과 25일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거리는 약 1200㎞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노딜' 이후 첫 방문지로 러시아를 선택한 것은 미국의 비핵화 압박에서 빠져나가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하노이 결렬 이후 미국은 '비핵화 없이 제재완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협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서 '빅딜'을 요구하는 것이다.
당장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 입장에선 탈출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기존의 '뒷배'였던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로 정치·경제적 지원을 확보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입장을 지지해왔고,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왔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의 요청을 받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핵심 참여자가 될 경우, 중국에 밀리던 동북아내 정치적 위상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푸틴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동방정책'이 탄력을 받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방러에 대해 "비핵화 과정의 프로세스"라면서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코메르산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4일 푸틴 대통령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하고, 극동연방대 캠퍼스 내 호텔에 묵는다. 25일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소화하고 합의된 내용은 공동선언의 형태로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직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포럼' 참석차 떠나지만, 김 위원장은 26일까지 현지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김 위원장이 2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문한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야간 관광과 경제시찰에 나섰던 만큼, 이번에도 비슷한 행보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문했던 태평양함대 사령부와 숙박했던 호텔, 유명 관광지인 프리모르스키 수족관, 발레 공연장인 마린스키 극장 등이 거론된다.
북러 정상회담을 앞둔 23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사용할 벤츠 차량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