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정치부 기자
한일 양국은 누가 뭐래도 역사·지리·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다. 경제적으로 한일 양국은 서로에게 3위 교역당사국이며 지난해 양국 간 인적교류 규모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문재인정부가 집권 초 발표했던 국정과제 중 하나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달성을 위해서도 일본의 협조는 필수다. "동북아 지역 내 지정학적 긴장과 경쟁구도 속에서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생존 및 번영에 우호적인 평화·협력적 환경을 조성한다"는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 구상만 봐도 그렇다. 문 대통령이 올해 3·1절 기념사를 통해 제시한 '신한반도체제 구상' 현실화, 이 과정에서 거쳐야 할 동북아 비핵무기지대 건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좀처럼 한일관계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우려스럽다. 문재인정부가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서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추구하면서도 경제·안보 현안에서는 협력한다는 투트랙 원칙을 제시하고 잘 관리해왔지만, 이후 한일관계 악화를 방치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이른바 '욱일기' 문제와 대법원의 징용공·근로정신대 배상판결, 한국 해군함정 대상 일본 초계기 근접비행 등의 이슈에서 다른 대응이 가능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사이 한일 양국 국민들 사이의 마음까지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정부 간 갈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는, 일본 내에서 미일동맹 해소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현행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세력(평화주의자)과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세력(국가주의자) 사이의 갈등이 과잉돼 전해지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그 밑에는 현재 일본의 근간을 이루는, 미일동맹 유지를 근간으로 헌법개정 여부에 의견을 달리하는 제도적 현실주의자와 정치적 현실주의자 사이의 '쟁투'가 진행 중이다. 남 교수는 "이 중 제도적 현실주의자들은 동아시아에서 협력의 레짐을 만들어 일본 안보위협을 해소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을 어떻게 우리의 우군으로 재조직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동아시아 내 새로운 질서수립 논의 과정에서 '일본이 어디로 가든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식의 분위기를 풍기면, 일본 내 제도적 현실주의자들이 자신들을 배제한다는 의심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나 '새로운 100년을 위한 남북일 공동선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구호로 끝날 우려가 크다. 밑에서부터의 동의가 수반되지 않는 당국 간 논의는 언제나 진척이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해법을 찾으면 될 일 아닐까. 일본에 대해 정의의 원칙을 더 강하게 주장하되, 국민들에게는 '국제정치 현실에서 확보할 수 있는 선이 여기까지다'는 점을 제시하고 대안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총론적으로 옳다. 다만 이것이 가능할까. 정치권은 한일문제를 언제나 국내정치화 해왔고, 일부 국민들은 1일 즉위한 나루히토 '천황' 또는 '일왕' 표기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최한영 정치부 기자(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