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 여성 치마 속을 20회에 걸쳐 촬영한 A(30세)씨는 지난 3월14일 수원지검으로부터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수원지검 박모 검사는 김씨에 대한 불기소결정서에서 “피의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피의자는 초범이다. 이 사건은 피해자들의 치마 속을 20회에 걸쳐 동영상 촬영한 것으로 사안이 가볍지 않으나, 피의자가 범행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인적사항이 밝혀진 피해자와 합의한 점, 피의자가 평소 사회복지 자원봉사활동을 해왔고, 이 사건이 우발적으로 범해진 것으로 재범우려 높지 않다고 판단되는 점을 참작한다”고 적시했다.
#. 여성의 다리를 2번 촬영한 20대 남성 B씨는 지난 3월26일 인천지검으로부터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받았다. 인천지검 권모 검사는 불기소결정서에서 “피의자가 2018년 8월3일경 지하철역에서 반바지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촬영한 사실, 같은 해 9월경 지하철역에서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촬영한 사실은 각 인정된다”면서도, 2008년 9월25일자 대법원 판결 등에서 “촬영한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인지’ 여부를 고려해” 미온 처벌한 판례들을 인용한 후,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없다”고 적시했다.
자료/대검찰청 2018 범죄분석
'정준영 단톡방' 등 불법동영상 사건으로 사회가 들썩인 지난 3월에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이른바 ‘몰카’범죄를 저지르고도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치마 속 19번 찍고 20번째에 걸렸는데 초범?”
A씨는 19 차례 영상을 찍고 20번째에 적발이 됐는데도 검찰은 불기소 사유 중 하나인 ‘초범’으로 인정했다. 다수의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인적사항이 밝혀진 피해자와만’ 합의한 점이 참작됐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이사를 맡고 있는 김영미 변호사(법무법인 세원)는 “사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기소유예비율이 높은 편이다. 초범이고, 반성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3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대부분 처음 걸렸을 땐 기소유예를 많이 해주는 편이라 이것만 꼬집을 수도 없다”면서 “그런데 딱 한 번 한 게 아니라 여러 번 범하다가 마지막 한 번 걸렸는데 그걸 초범으로 보고 기소유예를 한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B씨의 경우 촬영된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부위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풀이된다. 이에 김 변호사는 가해자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은 처분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허벅지’나 ‘엉덩이’ 같은 부위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하는데, ‘종아리’나 ‘발목’ 등은 좀 애매하게 판단하다보니 무죄 판결을 한 것 같다”고 예상했다. 다만 그는 “종아리라고 해도 당사자 입장에선 충분히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너무 협소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가해자의 의도는, 그걸 본인의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찍었을 것인데, 가해자의 의도도 고려해야 하는데 단순히 그 부위만 갖고 무죄를 주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몰카범죄 느는데 기소율은 낮아
몰카범죄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율이 원체 낮은 점이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이 분석해 발표한 ‘2018 범죄분석-범죄 발생 검거 및 처리’에 따르면, 지난해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는 집계된 건만 5195건에 이른다. 이중 절반이 넘는 2518건이 불기소 또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건수는 2319건이었는데, 이중 구속기소는 150건에 불과했고, 1259건이 불구속 기소, 911건이 약식 기소됐다. 358건은 청소년 범죄로 소년 보호 송치 처분이 났다.
이런 처분은 대검이 같은 자료에서 분석한 ‘10년 동안 범죄 발생 및 범죄자 특성 추이’ 내용과 비교했을 때 모순된다. 대검은 보고서에서 “성폭력범죄 발생건수의 구성비 중 지난 10년간 가장 급격한 증가를 보인 범죄는 ‘카메라 등 이용촬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전체 성폭력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6%수준이었으나 이후 지속 증가해 2015년까지 24.9%의 비중을 보였고, 2016년 17.9%로 축소됐다가 2017년에는 20.2%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몰카범죄가 최근 가장 급격한 증가를 보이는 성범죄 유형이라면서도, 절반 이상을 불기소 처분으로 풀어준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여성변호사회 소속 김혜겸 변호사(법무법인 광안)는 “기소유예는 검사의 재량이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형사소송법상 기소할 수 있는 게 검사뿐이라, 검사가 봤을 때 초범이고 양형사유를 봤을 때 ‘이 정도는 한 번 봐주자’ 하면 기소유예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기소유예는 한 번 이상은 안 준다. 초범에 한해 한 번만 준다”면서 “검사의 재량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검 관계자는 “대개 ‘본인 사진을 찍다가 상대방이 끼어든 경우’ 등 논란의 여지로 불기소가 될 수 있고, 또 하나는 혐의가 있지만 피해자가 합의해준 경우 교육받는 조건으로 불기소가 될 수 있다”면서 “‘다리’와 ‘치마 속’에 대해 수치심 유발에 있어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처벌 범위는 좀 더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엄격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