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청와대는 23일 한 외교관이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야당에 유출시킨 사건을 놓고 "한미 간 신뢰를 깨는 행위"라고 우려했다. 해당 공무원에 대한 감찰에 착수한 외교부는 조만간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직 외교관이) 대외공개가 불가한 기밀로 분류된 한미 정상 간 통화내역을 유출한 것으로 확인했고, 유출한 본인도 누설에 대해 시인했다"면서 "조만간 외교부에서 감찰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은 '3급 국가기밀'에 해당한다. 형법 113조에 따르면 외교상의 기밀을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누설할 목적으로 기밀을 탐지 또는 수집한 자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앞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지난 7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 직후인 5월 말 방한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백악관이 공개하지 않은 내용으로, 당시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보 유출자 색출에 나섰다. 그 결과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외교관이 강 의원과 2~3회 통화를 하면서 해당 내용을 알려준 정황이 파악됐다. 해당 외교관은 강 의원의 고등학교 후배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화내용 유출은 '공익제보'"라는 한국당의 주장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부정과 비리를 외부에 알리는 것이 공익제보"라면서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은 부정·비리의 공익제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어 "이 사안은 한미 간 신뢰를 깨는 문제가 될 수 있고, 무엇보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이 굉장히 민감하다"면서 "누설 된 것은 한반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라 공익제보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의 유감 표명 여부에 대해선 "미국 쪽에 어떤 반응 있었는지는 제가 확인할 수 없다"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감찰 과정에서 공무원의 휴대폰을 임의 제출받은 것은 위법이라는 지적에 대해 "대상자의 동의를 받고 이뤄지는 것으로 전혀 불법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강 의원의 책임 여부'에는 "강 의원은 저희의 감찰·조사 대상은 아니다"며 "저희가 가타부타 언급할 부분이 없는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강 의원의 주장이 결과적으로 사실인 것 아니냐는 견해에 대해선 "어떤 내용이 사실이고 어떤 내용이 틀렸는지를 말하는 것조차가 기밀누설에 해당된다"면서 "그것을 일일이 다 확인해 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강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강 의원은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국민적 관심사이고, 야당 의원에게 모든 정보를 숨기는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의정 활동"이라면서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 밝힌 내용을 갖고 담당 공무원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는 것이 촛불정부에서 가당하기나 한 일이냐"고 비판했다. 그는 "청와대 대변인이 '사실무근이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면서 야당 의원을 겁박했다"면서 "청와대가 국민을 속이려고 거짓 브리핑을 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했다. 청와대는 저와 국민에게 사과부터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공무원 휴대폰 사찰 관련)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